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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수족관

존 하그로브

by 김알옹

미국 아쿠아리움 씨월드의 조련사가 폭로한 아쿠아리움에서의 범고래 사육의 진실. 2015년에 발간된 책이 2024년에 번역되어 한국에 발간되었다. 저자는 범고래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10대 후반부터 20여 년 간 범고래 조련사로 근무했으나, 씨월드 내의 부조리와 동료 조련사의 죽음 앞에서 이를 악물고 자신의 꿈을 모두 버리며 내부고발을 감행했다. 2013년 관련 내용의 <Blackfish>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되었다.





범고래는 그 귀여운 외모와 달리 Killer Whale이라 불리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지능이 높고 여러 마리가 무리생활을 하며 5미터가 넘는 길이에 몸무게 5톤 이상의 엄청난 덩치를 자랑한다. 그 유명한 ‘죠스’의 백상아리를 간단히 사냥해 간만 빼먹고 버릴 정도이니 바다에서 범고래를 대적할 상대는 없다고 보면 된다.


png.png 희생된 조련사 돈 브랜쇼와 틸리쿰의 단란했던 한 때


이 범고래를 바다에서 포획해서 훈련시켜 20년 넘게 쇼를 해온 씨월드 아쿠아리움에선 인명사고가 몇 건 발생했는데, 2010년에 올란도 씨월드에서 틸리쿰이라는 수컷 범고래가 조련사를 익사시킨 사고가 발생했다. (말이 익사지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만신창이로 만들어놨다고 한다.) 틸리쿰은 과거 조련사 한 명, 몰래 수족관에 잠입한 사람을 한 명 죽인 전과가 있는데, 씨월드 입장에선 워낙 범고래를 구하기 힘들어서 그냥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해 왔다가 이런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덩치 큰 동물을 좁은 수조에 가두고, 고난도의 쇼를 위해 끝없이 훈련시키고, 실수하면 먹이를 안 주고, 범고래 집단에서 따돌림도 발생하고, 수족관 자체적으로 인공수정을 시켜서 범고래를 자체 번식까지 시킨다. 자연에서는 60세 넘게 사는 범고래가 수족관에선 40세도 못 산다고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개장 후, 마침 아이가 ‘바다탐험대 옥토넛’을 좋아해서 약 3년 정도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거의 매주 다녔다. 정말 많은 생물들이 좁은 수조에 갇혀 살고 있었고, 그 백미는 항상 웃는 표정의 하얀 고래 벨루가였다. 범고래 정도는 아니지만 벨루가도 한 덩치 하는 녀석인데(길이 3미터, 무게 1톤), 이 큰 녀석들 세 마리를 좁은 수조에 넣어놓았다. 아쿠아리움 개장 후 2년이 지나 한 마리가 폐사했고 또 3년이 지나 다른 한 마리가 폐사했다. 이 장소를 너무나도 좋아하던 아이에게 “인간의 욕심 때문에 불쌍한 벨루가 두 마리가 여기 갇혀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하늘나라로 갔단다.“ 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역시나 집에서 멀지 않은 어린이대공원 동물원도 자주 갔다. 여기 동물들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동물 복지 따위는 거의 고려되지 않은 공간에 살면서 건강을 해치고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정형행동으로 표출하는 공간이었다. 10미터 정도 되는 유리창을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북극곰의 정형행동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아이에게 차마 ”저 북극곰은 마음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다쳐서 저렇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거란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생태계 최상위에 있어서 다른 동물을 길러서 먹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한데, 자신들의 재미만을 위해 동물을 가둬서 구경거리로 만들기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 종의 생태를 연구한 자료들이 있고, 평생 봐도 다 못 볼 분량의 생태 다큐멘터리들이 쌓여있고(심지어 요즘 나오는 다큐멘터리는 4K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체험이 모두 가능해진 세상에서 동물원이 반드시 필요할까?


씨월드는 여전히 범고래 관련 오락거리를 여러 곳의 아쿠아리움에서 제공하고 있다. 아무리 비판받아도 돈만 벌면 질끈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리면 된다. 언젠가 이 지구에서 인간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다가 자멸해 버리고 나면, 그제야 다시 순수한 생태계가 작동하게 되겠지. 그때의 동물들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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