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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by 김알옹

대한민국 주류(酒類)문학의 대가로 올라선 작가님의 만취 산문집. 2018년에 <오늘 뭐 먹지?>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산문집의 리모델링이다.


작가님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의 첫 글자를 따면 ‘안주‘라고 자학개그로 포문을 여신다. (아예 표제작도 없이 모든 작품에서 술을 들이키다가 제목도 적당히 취한 상태로 지으신 듯한 <안녕 주정뱅이>는 읽으며 괜히 나도 취하는 느낌이었다.)


난 작가들이 창조한 세계 안에서만 실컷 그 이야기를 즐기고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아주 좋았던 소설을 읽게 되면 작가의 인터뷰 정도는 찾아서 보게 되었고, 이제는 가끔 그 작가의 소설 아닌 글들도 찾아서 읽어본다. (그 계기는 정지아 작가님의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였다. 묘하게 여기도 술이네?)


2018년에 나온 책을 읽진 않았는데, 작년에 <각각의 계절>을 읽고 작가님이 조금 더 좋아졌다. 그래서 도서관에 꽂혀있던 <술꾼들의 모국어>를 냉큼 집어왔다.




이 산문집은 작가님의 ’술의 일대기‘이다. 작가님과 작가님 가족의 이야기를 술과 음식(혹은 안주)에 녹여서 한 상 맛있게 차려주신다. 음식(안주)에 걸쳐있는 이야기는 그리 길진 않다. 술 취해서 한 말 또 하고 계속하는 그런 술주정이 아니다.


작가님과 작가님의 언니와 작가님의 애인 셋이 동네 중국집에 가서 항상 요리 하나와 간짜장 둘을 시켜 셋으로 나눠먹으며 술을 마셨는데, 어느 날 중국집 주인이 알고 보니 작가님 책의 독자여서 기함했다는 에피소드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서두에 작가님이 술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을 쓰니 몹시 힘들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산문집에서도 술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는 왠지 어색하고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ㅋㅋㅋ


이 기록을 남기는 지금 나는 몹시 고통스럽다. 예전에 읽은 작가님의 어느 단편에 등장하는 맛집이 대체 어디였는지 떠오르지 않아서이다. 그러니까… 작품 안에서 주인공이 차를 타고 어딘가 깊은 산속 깊숙이, 대체 여기에 뭐라도 있을까 싶은 곳으로 들어갔더니 갑자기 식당이 등장했는데 그곳이 엄청난 맛집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그때 구글링해서 실제 식당도 찾아놔서 언젠가 꼭 가고 말리라 다짐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무슨 메뉴였고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회사 회식이 아니면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데 40대의 이른 건망증에 고통받다니, 술이나 마시고 건망증에 시달렸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텐데.




조금 더 찾아보니까 <안녕 주정뱅이> 속 <삼인행>에 나오는 원주 어딘가의 삼계탕집이었나 보다. (<안녕 주정뱅이>를 다시 읽어야겠다!) 산문집에 작가님이 가끔 원주의 토지문학관에 들어가서 글을 쓰다가 다른 작가님들과 의기투합해서 또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분명 그 근처 어딘가 삼계탕집에서도 한 잔 하셨을 것 같다. (이것은 합리적 추론!) 역시 <술꾼들의 모국어>를 읽길 잘했다.


samgye.png 계곡 옆에서 먹는 삼계탕의 맛! 원주 가면 먹어야지...


그런데 난 삼계탕을 먹어야 할까 술을 마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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