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그 옛날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을 사서 책장에 꽂아놨더니 어머니가 책 제목을 보시고는 “으휴… 뭐가 되려고 맨날 저렇게 끔찍스러운 책이나 읽고 다니고…” 라며 한탄을 하셔서 "아니 이 책은 프랑스의 촉망받는 젊은 작가가 쓴 재미있는 소설책이에요. 아들이 불어 조금 배웠잖아요."라고 변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 줄거리는 말 그대로 살인자가 건강해지기 위한 방법이었답니다 어머니...
그 젊은 작가도 어느덧 60을 바라보고 있다. (1967년생) 그때의 기억에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있던 작가님의 책을 오랜만에 빌려왔다.
제목을 보고 '음... 이 책은 첫 번째 흘리는 피에 대한 이야기일 테니 첫 번째 살인에 대한 살인자의 회고록일까? 아니면 첫 월경으로 상징되는 한 여성의 성장기? 혹은 처녀성 상실과 관련한 어느 여성의 비극? 누군가 죽음 앞에 흘린 마지막 피에 대비되는 탄생과 연관된 첫 번째 피... 고로 그 어떤 주인공의 연대기?' 등등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아버지에게 바치는 책이었다! 외교관이었던 작가님의 아버지는 코로나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아버지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이제 소설적 재미를 가미한) 한 편의 소설을 쓸 수 있을 만큼 아버지의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딸이라니, 사춘기를 지나며 딸과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는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보면 몹시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파트리크(아멜리의 아버지)는 외가에서 자라다가 방학이 되면 시인인 친조부의 집에서 요즘 말로 하면 '한 달 살기'를 했다. 외가에선 왕자처럼 지냈지만 막상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그는, 아이가 많고 가난해서 항상 배고프고 춥게 지내야 했던 할아버지의 집에서 오히려 행복하게 지냈다. 성장하면서 연애도 하고, 졸업 후 외교관이 되는 이야기를 짧은 문장으로 그려낸다.
이 이야기의 양쪽에 콩고 반군 앞에 인질로 잡혀 시간을 끄는 외교관의 모습을 감싼 게 이 소설이다. 책의 첫 단락에선 반군에게 총살당하려는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기억들로 넘어가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마지막 단락에선 어린 시절을 지나 외교관이 된 이후 콩고에서 어떻게 지내며 이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부드럽게 넘어온 후, 결국 총살을 피해 살아남아 셋째 딸의 탄생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 셋째 딸이 아멜리다.
반군 지도자가 파트리크에게 자식이 몇이냐 묻고, 둘이라 답하니 이렇게 묻는다. 조금 낯간지러운 대사지만 '목숨을 걸고 살아남아 내 아버지가 되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딸의 묵직한 사부곡에 걸맞은 물음이 아닐까 싶다.
"셋째도 낳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