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영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존 싱어 사전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안토니 반 다이크, 토머스 게인즈버러와 조슈아 레이놀즈,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와 외젠 들라크루아, 프리다 칼로, 폴 고갱, 디에고 벨라스케스, 후안 데 파레하, 알폰스 무하, 엘 그레코, 카미유 피사로, 베르트 모리조, 니코 피로스마니, 폴 세잔, 살바도르 달리, 조르주 쇠라, 오딜롱 르동, 고지마 도라지로.
이렇게 많은 유명한 화가들의 이야기들을 그림들과 함께 담아낸 한국경제신문 기자의 책. 서양미술사를 인물 위주로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예술작품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식들을 알게 되는 건 환영이다. 작품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면 그 감동은 몇 배로 커지겠지만…
15년 전 신혼여행 때, 당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던 스페인으로 자유여행을 떠나서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네르하, 마드리드를 조금씩 즐기다 왔는데, 그때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가보고는 '미술관을 제대로 보려면 이 도시에 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카라바조의 <다윗과 골리앗> 및 다른 작품들의 쨍한 색감과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그림의 거대한 크기는, 그 뒤로 카라바조의 그림만 보면 그때 미술관에서의 어딘가 압도되는 느낌이 생각나곤 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본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내 인생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미술작품이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그 거대한 그림 앞에서 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혼 후 다음 해에는 파리에 일주일 머무르면서 오르셰와 루브르를 보는 데에 사흘 정도를 쓰고 앓아누웠다. 발과 다리와 허리와 어깨까지 모두 곡소리를 냈다. 뭔가 긴 시간 서서 관람하는 건 노동이구나, 천천히 움직이면서 계속 서있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루브르는 너무 방대했고,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작았고, 오히려 오르셰가 (상대적으로) 작고 볼 만한 작품도 훨씬 많았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하루 종일 그 앞에서 바라만 봐도 황홀해지는 작품이었다.
파리에서도 '여기 살면 시간이 생길 때마다 와서 이걸 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너 파리에 가서 살아'라고 하면... 글쎄요. 국제학교와 주거비와 차량과 프랑스어 선생님을 제공해 준다면 고려해 보겠습니다.
가라는 미술관은 안 가고 튈르리 정원 벤치에 앉아서 책이나 계속 읽지 않을까 싶다.
파리에서 이태리로 넘어가 로마와 피렌체와 베니스도 이틀씩 머물렀는데,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일일 투어를 하며 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피에타> 앞에서의 감동 또한 잊을 수 없다. 돌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어떻게 저런 곡선과 표정을 그려낼 수 있지? 떨어지면 목이 부러져 즉사할 것 같은 높이에 저런 대작을 어떻게 그렸지?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던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인류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외계인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나만큼의 예술적 경험은 아이에게 꼭 시켜주고 싶은데, 문제는 돈과 시간 그리고 체력이다. 대학생이나 돼야 데리고 유럽을 돌아다닐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내가 미술관 투어들을 버텨낼 체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내 아들이라는 한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 인류의 문화유산을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그때도 있다면... 할 수 있을 거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책도 많이 읽을 테니 그때도 난 열심히 체력을 관리해서 건강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