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령, 이주혜, 이희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단편 세 편이 담겨 계절마다 출판되는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 2023년 겨울호에 무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작가님의 작품이 담겨서 즐겁게 읽은 뒤로 (예소연 작가는 나랑 안 맞았다.) 눈에 띄면 종종 챙겨 읽고 있다.
2024년 겨울호에는 성혜령+이주혜+이희주 세 작가님의 작품이 담겨있다. 짧은 감상을 남긴다.
성혜령 <운석>
아무리 봐도 결혼할 '때'가 되어 결혼한 것 같지만 무난하고 말썽 없이 평범한 사람이라 결혼했는데, 어느 날 그 남편이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살고 있는 나에게, 그동안 항상 눈엣가시처럼 굴며 내 기를 빨아가는 남편의 여동생이 운석이라고 주장하는 돌을 하나 가져와서는 여기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인물 묘사 - 특히 그 시누이의 언행은 마치 직접 경험이라고 한 것처럼 잘 그려져 있다. 남편이 운석 안에서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이유는 딱히 이해가 되진 않는다.
위의 운석 사진을 찾다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운영하는 운석신고센터라는 곳을 찾았다. 운석 감정을 의뢰하는 곳이다. 넓은 땅덩어리에서 운석을 찾아내려면 사람들의 신고가 필수겠지만 운석으로 감정되고 나면 소유권은...? 로또 맞는 거랑 비슷하겠지?
이주혜 <여름 손님입니까>
2025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작가님의 단편이 한 점 들어가 있는데, 배경이 일본임이 비슷하다. 주인공이 어릴 때 집에 손님으로 오래 머물며 엄마의 지극한 돌봄을 받은 엄마의 조카는, 어느 날 훌쩍 일본으로 떠나 엄마의 서운함을 자아낸다. 그 언니가 뒤늦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려와 주인공이 일본에 방문한다.
누구나 한 번은 꿈에서 맞닥뜨리는 상황. 아무리 돌아다녀도 지치기만 하고 목적지에 당도하지 않는데 시간은 어느새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있다. (난 이런 꿈을 자주 꾼다.) 조금은 환상적인 느낌의 결말이다.
이희주 <최애의 아이>
과격한 설정과 전개다. 언젠가인지 모를 미래를 배경으로, 정자 공여를 통해 아이를 낳는 미혼 여성이 주인공인데 그 정자는 자신의 최애 아이돌이 뽑아준 것이다. 회사 사람들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고 육아휴직에 돌입한 주인공은 최애의 사인회에 참석한다. 생물학적 아빠에게 마치 은혜를 받듯이 사진도 찍고 좋은 말도 들은 주인공은 몹시 만족하여 '이걸로 충분하다'라며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러나 그 정자의 공여자는 사실 유력 정치인이었고, 정자 공여 사업은 케이팝의 인기를 등에 업고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치적 시도였다. 주인공은 이를 수용하는 듯하나 결국 그 유력 정치인의 유세 현장에 찾아가 아이를...
불쾌한 결말이다. 읽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자신의 소설의 주 독자가 될 2-30대 여성들 마저도 눈을 찌푸릴 만한 행위를 묘사해 놓고 과연 이 작가는 만족했을까?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인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갈아서 죽이나 이미 어느 정도 큰 아이를 토마토로 만들어 죽이나 그게 무슨 차이냐고 주장한다면 대체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