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뤼크
어쩐지 날씨가 춥고 햇볕이 모자라는 기후 탓에 국민들이 우울증이 심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우리 머릿속에 각인시켜 준 북유럽 국가들. 그중 대장격인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쓴 책이다.
OECD 자살률 1위를 20년째 놓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실제 질병관리청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며, OECD 국가 평균(11.1명)의 2배 수준으로 2004년 이래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라고 아래 표를 설명한다.)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해서 골라온 책인데,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책에선 정신질환이 원인이라기보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을 한 방에 끝내버리려는 목적으로 자행되는 우리나라의 자살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복지국가'에서의 자살 문제를 다루고, 그 중심에는 안락사(조력사)가 있다. 아직 소달구지를 주 이동수단으로 쓰면서 차세대 이동수단으로 자동차라는 신문물이 등장한다고 도로를 정비하고 있는 나라에서 '전기차의 주행장단점과 충전인프라 구축방안'에 대한 논문을 던져놓은 느낌이랄까?
사회가 어떻게 국민들을 자살이라는 종착지로 던져 넣는지 국민적 토론과 예방을 위한 합의도 아직 이뤄지지 않은 곳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과 안락사의 윤리 문제를 논하기엔 아직 시기상조 아닐까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아래 내용을 보면, 조력사에 관심 없었던 나 같은 사람은 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모르던 사이에 이런 신문물이 바깥세상에 생겼다고? DIY는 이케아 가구 조립할 때 쓰는 말 아니었어?
'죽음의 의사' 혹은 '조력사 분야의 일론 머스크'로도 알려진 필립 니츠케(Philip Nitschke) 스포트라이트를 피하지 않는다. (중략) 니츠케는 엑시트 인터내셔널이라는 조직을 세우고 '딜리버런스 머신'(일명 '구원 기계')이라는 자살 기계를 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기계는 의사의 도움을 최소화하거나 받지 않으면서, 확실한 DIY 식 자살 여정을 지원한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트북에 이 기계를 연결한 후, 확실하게 결정했는지, 판단을 내리기에 정신 상태가 충분히 명료한지 등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 된다.
마지막 질문은 이렇다.
"이 버튼을 누르면 치명적인 물질이 주입되어 15초 안에 사망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버튼을 클릭하면 기계는 정맥 주사를 통해 치명적인 액체를 혈관에 주입한다. 이 기계의 목표는 죽고자 하는 사람이 버튼을 클릭함으로써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죽고자 하는 사람이 죽을 시점을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이때 방 안에 의사가 동석할 필요도 없다.
니츠케는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밝혔다.
“저는 사형 집행인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직접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니츠케는 이 기계를 사용한 덕분에 최초로 합법적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 기계가 등장한 직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조력사가 금지되었으나 니츠케는 보건의료의 개입 없이도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는 장치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
엑시트 인터내셔널에서는 고통 없이 확실한 방법으로 자살할 수 있는 지침을 담은 책도 제공하고 있다. 50세 이상이면 책을 구입할 수 있지만, 당연하게도 책의 내용은 인터넷에도 게시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으며…(중략) 2015년 오스트레일리아 의료위원회는 니츠케의 의사면허를 박탈했다.
(중략) 니츠케는 최근에 DIY 사망을 위한 '사르코(Sarco)'라는 장치도 발명했다. 사르코는 성인 한 명이 넉넉하게 들어갈 크기의 우아한 플라스틱제 구형 박스다. 전면에는 큰 유리창이 나 있다.
이 장치는 안락사 문제의 주체를 의사에게서 개인으로 옮기는 상징적인 장치로, 1990년대에 니츠케가 개발한 장치를 한층 발전시킨 것이다. 사르코는 안에 몸을 누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버튼을 누르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지 아시나요?”
버튼을 누르면 사르코 안에 가스가 채워지며 사망하게 된다. 질문과 답변은 동영상으로 녹화되며, 추후 사망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증거로 활용된다.
조력사를 둘러싼 법적 분쟁은 상당히 많다. 대부분의 국가는 개인의 판단력에 대해 의사의 판단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판단력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답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니츠케의 팀은 개인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임을 데이터로 입증할 수 있는 질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건의료 부문의 개입을 모두 제거할 계획이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사르코를 구동하기 위한 네 자리 코드가 제공된다.
왜 다른 나라 조력사 이야기를 읽으며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그린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게 낫겠다. 자살 문제에서도 신토불이를 느끼는 현실이 씁쓸하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4,439명이며, 이는 하루에 약 40명 꼴이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에 30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