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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너

헤르만 코흐

by 김알옹

네덜란드 작가의 소설. 형제 부부 네 명이 갖는 저녁식사 코스를 각 챕터로(아페테리프 - 애피타이저 - 메인 - 디저트 - 디제스티프 - 팁) 구성해 고급 레스토랑의 코스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음식 묘사에 공을 들이고, 식사 진행 중간에 시간대를 오가며 벌어진 사건과 회상을 녹여낸다. 구성 자체는 아주 매력적이라 중반까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점점 주인공 부부의 비뚤어지고 불쾌한 가족애를 합리화시킨 내용이 등장하면서 독자에게 몹시 불쾌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06091718_o (1).jpg 2015년 작 <더 디너>의 스틸컷. 딱 봐도 쎄한 인상의 사람이 한 명 있다.



소설 내내 주인공이자 화자이며 퇴직 역사교사인 동생은 네덜란드의 차기 수상이 유력한 정치인인 형에게 강한 증오심을 갖고 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보통은 주인공의 편에 서고, 게다가 1인칭 시점이면 더 마음이 기울어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다. 주인공의 아름다운 아내는 몹시 현명하다는 인상을 마구 풍기고, 소설 중반까지는 형이 악한 정치인으로 그려지기에, 큰 사고를 친 주인공의 외아들과 형의 아들 두 녀석 때문에 벌어진 상황을 주인공 가족에겐 어떤 방식의 구원으로, 형의 가족에겐 어떤 방식의 징벌로 마무리할지 기대가 컸다.


그러나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폭력행위와 거친 발언을 정당화하고, 현명한 척하는 주인공의 아내는 외아들을 지키려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결국 남편과 다를 바 없는 폭력행위를 저지르고, 거리낌 없이 일면식 없는 노숙자에게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묻지 마 폭행'을 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주인공의 외아들 놈은 마치 선한 양이된 듯 부모가 이 사건을 처리해 주길 뻔뻔하게 기다린다. 부모가 저 모양이니 애가 저렇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내용이다. 오히려 형은 자신이 책임지는 정당한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지만, 동생 가족에게 격렬한 방식으로 제지당한다.


통상적인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이 읽는다면 내내 불쾌할 뿐인 소설이다. 이 강한 불쾌감은 '혹시 내 아이가 이런 일을 벌이면 어쩌지?'라는 상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내 머릿속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한다. 막상 내 혈육이 저지른 반사회적인 행동 앞에서 과연 윤리적이고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인 나는 냉정하게 이 녀석을 감옥에 보낼 수 있을까? 부모 마음이 또 그렇지 않거든...


그렇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읽기 불편한 소설이다. (요즘 애들 말로는 '긁')


연극무대에 올리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라 실제로 다양한 연극 무대에 올려졌다고 하며, 영화로도 여러 차례 각색되었다. 한국에서는 무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보통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연출했지만, 흥행엔 실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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