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엄청 빠르게 흘러가잖아요. 화살처럼 속히 간다는 말이 맞아요. 올해도 어느새 시간이 흘러 3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는 걸 보면요. 그런데 또 막상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그 때는 시간이 그렇게 더딜수가 없죠. 이럴 때 제 속에서는 온갖 갈등이 일어나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할머니가 되버리면 어쩌나 싶어 좀 붙잡아 놓고 싶기도 하면서 또 기다리는 일이 빨리 일어나길 바랄 땐 얼른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으니까 말이에요. 이것도 저것도 불만족. 느리게 갈 때 좀 저장해 두었다가 빠르게 갈 때 꺼내 쓸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생각하다가 아니 왜 중간이 없는거야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중간을 찾는 방법은 사실 이 극과 극을 다 경험하면서 찾거든요.
삼성서울병원, 연세세브란스 등 정신과에 무용치료세션을 한창 진행할 때에요. 환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현실감각이에요. 병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환우분들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못하고 자신의 병증 즉 망상이나 환각등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움직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무게감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어요. 왜 공포영화를 보면 영혼이 움직일 때 스르륵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때문에 세션에서는 어떻게든 무게감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애를 써요. 발을 쿵쿵 굴러가며 공간을 이동하기도 하고 상대편과 손바닥을 맞대고 서로 밀어보기도 하고요. 또 숨을 세게 쉴 수 있도록 하기도 하는데 손바닥 위에 꽃잎을 가득 올려주고 세게 불어 보기도 하죠.. 대부분의 환자들은 바닥을 쿵쿵 구르지도 못하고 밀어내는 힘도 없고 꽃잎을 날리도록 불지도 못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가장 가벼운 움직임에서 가장 무거운 움직임 양극을 경험해 보는거죠. 그러면서 자신이 현실에 있음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돕는거에요.
언젠가는 ADHD 아동들의 세션이 있었어요. 총 10번을 만나기로 하고 처음 아이들을 만난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여섯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오는데 한 명은 바닥에서 누워 계속 뒹굴고, 한 명은 비치되어 있던 북을 쉴 새 없이 두들기고 한 명은 공간을 계속 돌면서 뛰는데 전등스위치앞을 지날때마다 불을 켰다 껐다했죠. 한 명은 계속 나한테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고 하면서 밴드를 붙여달라그러고 한 명은 계속 어딘가에 올라가는데 책상, 의자, 피아노 심지어 창틀에도 올라가서 기겁을 하게 했고 마지막 한 명은 그러는 아이들에게 계속 이래라 저래라 하며 소리를 질러대더라고요. 와.. 상상이 가시나요? 전 영혼이 쏙 빠져나가는 줄 알았어요. 제발 모여보자고 애원했지만 아이들은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것 같았어요. 각자의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뻗어나가 마구 돌아다니는 고장난 프로펠러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랬던 아이들인데 8 혹은 9회기 즈음이었던 거 같아요.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지 뭐에요. 제가 “얘들아 여기좀 앉아봐” 라고 말을 한 거에요. 사실 말하고나서 바로 ‘아니 지금 내가 뭐라는거야? 얘들이 앉으라면 앉는 아이들이니?’ 라고 바로 반성하려던 찰나였어요. 글쎄. 그날도 어김없이 고장난 프로펠러처럼 마음대로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제 앞에 딱 모여 앉은거에요. 저 그날 울었잖아요 ㅜㅜ. 너무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그렇더라고요.
그때 아이들과 했던 움직임도 양극의 움직임 경험이었더랬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최대한 느리게 움직였어요. 마음껏 움직이다가 딱 멈추기도 하고, 가장 무겁게 움직이다가 가장 가볍게 움직이기도 하고요. 가장 큰 소리를 지르다가 소근소근 속삭여 말하기도 했구요. 그런 양극의 움직임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당한 움직임들을 스스로 배워나갔어요. 행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시작했죠. 그러더니 어느날 저에게 그런 감동을 안겨준 것이에요.
때때로 어떤 일들은 이렇게 양극의 경험을 해보면서 적정선을 찾아가나봐요. 지금 여러분이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누군가는 게임이 , SNS 등 온갖 미디어가 좋아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구요. 또 누군가는 건강하려고 시작한 운동이 강박이 되어 매일매일 온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줄도 모를 수 있어요.. 누군가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온통 그 사람만 생각하며 화를 식히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를 너무나 좋아해서 일상이 마비될 지경으로 한 사람만 떠올릴 수도 있겠죠. 슬픔이 너무 클수도 있고, 기쁨이 너무 클수도 있고요.
나에게 가장 적당한 수준을 찾아보면 어때요? 뭐가 되었든지요. 스스로가 찾고 싶은 부분들이 있을거에요. 먼저 그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요. 그리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어디에 치우치지도 않는 중용의 지점을 찾아봐요. 저도 지금 저울의 양쪽에 양 발을 얹고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시간이에요. 어쩔땐 엄청 빨리 가버리고, 어쩔 땐 엄청 느리게 가는 양극의 시간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요. 조금 지나면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시간의 우위에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아.. 그런데 아직은 안되요.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면서도 그 날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전 아직 많이 부족해요. 탄탄이 여러분은 저보다 낫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