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갑자기 시간이 빌 때가 있잖아요. 가득했던 일정에 갑자기 구멍이 생길 때요. 운 좋게 일이 빨리 끝났거나 생각지도 못하게 취소가 되거나 할때요. 그럴 땐 사실 해야할 일이 엄청 많잖아요. 혹자는 그러겠죠. ‘집안 청소를 하거나 밀린 독서를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등등등을 하면 되지’라고요. 사실 따지고 보면 할 게 왜 없겠어요. 그 시간에 꼭 하면 좋은 일들이 있긴 하죠. 그런데 그런 시간엔 또 그렇게 꼭 해야하는 걸 하고 싶진 않잖아요. 나만 그런가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럴 땐 꼭 누군가를 만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누군가를 떠올려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시겠나요. 여러분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나시겠나요. 왜 그런 질문들 가끔 하잖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래, 좋아해주는 사람과 결혼할래 하는 것들이요. 그 질문과 비슷한 거죠. 관계에 있어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에요.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겠냐는 것이죠. 물론 제가 보고 싶은 사람이 저를 보고 싶어한다면 더 바랄게 없겠죠.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렇던가요? 뭔가가 조금씩 어긋나고 빗나가고 그런게 인생사죠.
저는 늘 제가 보고 싶은 사람을 택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것이 제 결핍의 근원이라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관계에 있어서도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선택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죠.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죠. 내 마음을 다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피드백은 원하는 분량에 미치지 못할 때가 더 많을 수 있어요. 일도 그래요. 내가 좋아서 미친듯이 달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현타가 올 때가 있거든요. 내가 열과 성을 다하는 만큼 내 일이 내가 기대하는 어떤 분량까지 나를 이끌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책과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 등이 밀려오는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거에요.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에요. 날도 좋고 바람도 좋고 햇살도 좋고 갑자기 시간이 생겨 마음도 여유로와요. 누군가와 마주앉아 이얘기 저얘기 듣고 싶었는데 딱 오늘 그 분은 연락이 안 되시네요. 그래서 생각해봤어요. 언제 한번 차 한 잔 마시자, 밥 한 번 먹자 기다리는 분께 연락을 드려볼까하고요. 그런데 역시나 오늘도 전 제가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 않더라고요. 후자를 만나도 저에게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왜 보고 싶은 사람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 따로일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얘기해요.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요. 상대방에 대한 기대는 대체로 무모하고 어떤 일에서든 중요한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죠. 사랑도 관계도 일도 스스로 바로 설 수 있을 때 건강한 지속성을 갖게 되는 것인가봐요. 에리히 프롬은 그것을 신앙에 비유하더라고요. 합리적 신앙은 자기 자신의 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고 상대에 대한 믿음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견고성에 있대요. 어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합리적 신앙이 아닐뿐더러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그래서 사랑의 능력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생산적인 지향을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대요.
주변을 보면 딱 맞는 말이지 뭐에요. 죽고 못살던 연애를 하다가도 어느새 식어져버려 한 쪽은 매달리고 한 쪽은 떠나려고 하는가 하면 서로의 능력이 아쉬워 손을 잡다가도 잠깐 사이에 서로를 헐뜯는 것도 봤어요. 성격좋고 능력있다고 수하에 두었으면서도 소모품처럼 쓸모를 다하면 버려버리는가 하면 충성을 다해 모시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뒤돌아서는 배신을 꿈꾸구요. 상대방으로 인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거나,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닌거죠. 건강한 관계였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진 않았을거에요. 그러면서도 조금은 무모하게 서로가 똑같이 좋고, 똑같이 행복하고, 똑같이 위해줄 수 있는 관계는 없는 것일까 다시 기대해보기도 해요.
어느날 유비와 제갈량의 비유를 들었어요. 유비는 그의 지위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삼고초려를 통해 어린 제갈량을 영입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대우받으며 함께 하게 됐어도 결국 유비의 아랫사람으로 유비의 지휘를 따라야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결국엔 관계가 동등하긴 굉장히 어렵다는 얘기였던것 같아요. 저는 유비였을까요, 제갈량이었을까요?
새해가 시작된지도 어느새 꽤 되었네요. 일에서든 사람에게서든 우리는 늘 결핍을 경험해요. 그런데 올해는 우리 탄탄이들에게 흡족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마음껏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사랑받기를 바래요. 심혈을 기울인 일들이 놀라운 성과를 내주길 바래요. 열심히 운동한 만큼 멋지고 건강한 몸을 가지길 바래요. 열심히 공부한 만큼 인생의 거대한 비밀들을 알 수 있길 바래요. 공들인 모든 것들이 공들인 만큼 아름다워지길 바래요. 우리 올 한해 그렇게 만들어봐요. 저도 그럴게요. 보고 싶은 사람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간극을 좁혀볼게요. 열심히 일 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볼게요. 손에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을 괴로워하기 보다 기대함으로 기다려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