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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Mar 07. 2020

기운 잃지 말아요

넘쳐나는 시간 속에 능동성이라고는 1도 없는 못난 나에게.

지난해 정말 너무너무 바빴다. 나 스스로에게 칭찬해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은 학위를 받으면서 한숨 돌렸고 세션들이 겨울방학을 맞아  비수기에 돌입하면서 작정하고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쉴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다시 모든 세션들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말이다. 계획대로라면 난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공연을 보고 있어야 한다. 이런 금요일 저녁이라면 더더구나. 하지만 지금 난 누구와도 춤추고 있지 않다. 줄줄이 취소된 공연으로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봐야 할 공연을 집에서 TV로 팝콘을 먹으며 심란한 마음으로 관람했다.

코로나 19는 나에게 무한 쉬는 시간을 제공하며 강제휴가에 들어가도록 만들었고 그 긴긴 시간을 속절없이 당하면서 나는 예상치 못했던 나의 모습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아이들의 개학이 연기되었을 때만 해도 '그래 이런 시간이 언제 다시 오겠니. 24시간 붙어 뒹굴면서 웃고 떠들고 먹고 쉬자.'라는 생각으로 백수생활에 돌입했다. 자기 전 알람을 켜지 않았고 실컷 자고 일어나는 데로 먹고 놀았다. 그러면서 내심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지만 '그래 너무 정신없이 지낸 탓이야. 그동안 바빠도 너무 바빴어. 날 위해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라며 다독였다. 그럼에도 쉬는 것조차 점차 지쳐가며  아이들 개학날만을 카운트 다운하며 기다리는 중이었건만. 헐. 그런데 2주가 더 연기된 상황...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개학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마지막 금요일인데... 맙소사...

중요한 건 나의 모습. 게으름의 끝. 한심 그 자체를 만났다는 것.

나에게 능동성이라는 것이 1도 없다는 것의 발견이다. 나의 삶이 내 의지대로 살아간 것이 아니었나라는 허탈한 물음이 내 안에서 계속 올라온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밥을 먹는 시간 등 무언가를 해 보는 시간을 좀 정해서 해보려고 하지만 나 스스로 한 약속들이 계속해서 게으른 나날을 보내다 보니  '조금만 더 있다가', '그냥 내일 하지 뭐' 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많아지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쏟아져 버리니 아직 하나도 못 해봤다.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오늘 해도 그만.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라는 안이함이 온통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이렇게 게으르고 악할 수가.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해야 되니까 바빴던 것 같다. 몇 시까지 가야 하니까 일어나 준비를 했고.  정해진 스케줄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었다. 나를 움직이는 모든 에너지는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순전히 나의 외부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슬픈 일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 나의 삶은 피동도 능동도 아닌 태 즉, 중간태의 삶이었다. 어떤 일이 의뢰가 되는 그 순간만 능동적으로 스케줄을 잡고 이후는 매우 피동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마감시간까지 시간을 질질 끌고 바쁘다, 바쁘다 말하는 삶. 생각해보니 부끄럼이 앞선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모든 스케줄을 지장 없이 끝마쳤다는 안도감과 이젠 그러지 말아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 그러지 말자.. 다짐 다짐

이제 주말. 주말은 그나마 스케줄이라는 게 나름 존재하니(남편까지 함께 있다 보면 무언가 일정이 작동되니) 내일부터 다시 살아보려 한다. 나의 삶의 주인으로서 말이다. 시간에 질질 끌리지 않고 시간을 관리하는 삶으로. 어영부영 하루하루 흘려보내지 않고 작은 것이라도 하나하나 성취해보는 것으로 시작해 봐야겠다.  아주 작은 것 부터 힘들지만 나 나름의 계획표를 가지고 지켜봐야겠다. 이렇게 쓰고 나면 읽는 이들이 계시니 좀 지켜지지 않을까 하는 내 양심을 믿어보며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 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싶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더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별로 개선되지 않아 죄책감에 가득 쌓인 이에게.

대신 아파줄 수도 없는데 동생이 아파서 이런저런 생각에 매일 밤 잠못이루며 뒤척이는 이에게.

평소에도 우울했는데 요즘은 외출도 어렵고 누군가와 함께 밥 먹기도 어려워 더 우울한 이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공연이 물거품으로 흩어져 망연자실한 이에게.

함께 춤추기만을 학수고대했는데 집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에게.

할 일을 모두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 길을 잃은 이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는 모든 이에게 어떻게 하면 기운 잃지 않고 지금 이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도록 응원할 수 있을까.

코로나야 이젠 가. 우리 너무 힘들다

아듀 코로나

아무도 기운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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