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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태 Dec 01. 2022

꿈을 향해가는 이야기

[독] 6: 2분 30초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

초록 앞치마를 걸치고 푸른 제복을 꿈꾼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찰을 꿈꾸는 한 청년의 모습이다.

꿈꾼다... 꿈꾼다... 꿈이란 무엇일까.

     

“여러분의 꿈이 직업이 아니라 형용사나 동사였으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모든 입시가 끝난 후 우연한 기회로 참여한 지역의 초중고 학생이 모인 간담회에서 각자가 돌아가며 한마디씩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곳에 모인 미성년자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고3으로서 뭔가 조언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입시의 풍파를 겪은 수험생으로서 치열하게 부딪혔던 1년 동안 배운 가장 의미 있는 한 가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당시 절대 직업이 꿈이 될 수 없다는 신념 아래에 고교 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그리고 면접을 준비했었다. 생활기록부에 희망 직업 기입 칸을 두고 선생님들과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다. “어떻게 18년 밖에 안 살았는데 미래에 뭘 할지 지금 정할 수 있습니까?” 안타갑게도 대학교는 가고 싶었기에 어떻게든 직업을 정해 적어냈다. 지금도 직업이 꿈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꿈을 정하지 못해 이의를 제기했던 패기 있던 고등학교 시절이나 친구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며 순수하게 말하던 초등학교 시절이나 다를 바 없이 앞으로 내가 뭘 할지 모르겠다. 욕심이 많은건지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주의적인 말을 하니 누군가는 나에게 아직 초등학생이라고 하더라.


이런 고민 속에 생각보다 깊게 파묻혀 뭐라도 직관적인 결과물을 얻고자 준비한 번역 자격증 시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남들에게 지금 막연히 시간을 보내지 않고 뭐라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방패막이로 준비한 시험이었다.      


그렇게 자격증 시험을 보고 버스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시간 딱히 할 게 없었다. 시험 빼고 굳이 생각한 일정이 없어서 근처 독립서점을 찾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곳을 방문했다. 뭘 살지 고민하며 책들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30분쯤 지났을까 슬슬 스캔이 끝나갈 때 쯔음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2분 30초 안에 음료가 나가지 않으면 생기는 일.”


표지 디자인도 심플하고 두께도 적당하고 에세이 같았다. 슬슬 이런 책도 한 번 읽어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는지 무작정 펼쳐서 잠깐 읽어본 내용에 유퀴즈 온더 블록에 아버지가 출연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구매를 결정했다. 일요일 오후, 겨울이 제대로 오기 전 밖에 앉아있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해 숙소 근처 정자에 앉아 편하게 누워 책을 펼친다.

    

작가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문장을 읽고 그 순간순간의 떠오른 생각들을 여기 정리한다.    

  


pg 17. 나는 늘 시간이 문제였다. 시간에 맞춰 문제를 다 풀지 못한 적이 있다. 또 시간에 쫓겨 성급하게 문제를 푼 적이 있다.      

“모르면 오래 걸린다.” 시험과 시간 부족에 있어서는 정답이라고 여기는 문장이다. 공무원 시험은 아니지만 이제껏 많다면 많이 치러왔던 학업적인 시험에서만큼은 유효했었다. 같은 시험에서 숙달도에 따라 사람마다 문제를 간신히 다 풀거나, 몇 번씩 다시 풀거나 심지어 다 풀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여유롭게 문제를 푼 건 아니고 대부분 시간에 맞춰 간신히 끝낸 시험들이 많다. 오히려 대학교 전공 시험은 다 못 풀지만 시험 종료 전까지 끝까지 붙들고 있던 기억이 더 많다. 완벽히 공부해서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저 공부가 부족했음을 체념하고 그 순간 최선을 다해서 그동안의 모든 지식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풀 뿐이다.      


이 시간에 관한 이야기는 제한된 시간내에 커피를 만들어야 했던 작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pg 20. 모니터에 발간 숫자만 번쩍번쩍 거릴 뿐 2분 30초 안에 음료를 못 받았다고 소리치는 고객은 없다.  

커피가 나오는 시간까지 재고 있는 손님이 있을까?(일단 아직까지는 본 적 없다.) 혼자 왔다면 책을 읽든 휴대폰을 하든 공부를 하든 혹은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대화를 조금만 하면 금세 시간이 지나간다. 나에게는 급해 보이고 중요한게 남에게는 막상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급해 하지 말자. 빨리해서 실수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해도 실수하지 않는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때의 고통으로 우리는
 처음부터 제조과정을 정확하게 준비하는 것이
도중에 추가적인 단계를 밟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든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쉬나드

pg 61. 나는 보통 다시 만드는 편이다.      

정신없이 바쁠 때 휘핑을 올리지 말아 달라 했던 주문에 휘핑을 올려서 만들었을 때 작가는 휘핑만 살짝 걷어 내는게 아닌 아예 다시 만든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손님 입장에서도 휘핑 자국이 남아있는 음료를 받는다는 건 매우 불쾌할 수도 있다.     


이럴 땐 보수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휘핑을 걷어내고 주면 괜찮다며 그냥 드시는 손님이 있을 수도 있고 불쾌함을 느끼실 수도 있다. 이는 잘잘못이 아닌 당연히 들 수 있는 불쾌함이다. 그러나 아예 새로 만들면 어떤 손님도 휘핑에 있어서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만들면 좋겠고 새로 만들면 손님을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실수에서 고민하기 보다 곧바로 새로 만든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pg 82.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긴다고 했다. 전공이 없어서 비소유자가 아니라 경험을 가진 소유자라고 생각하자.     

작가는 영상과 문학을 배우다가 두 번의 자퇴 그리고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며 카페에서 일하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즉, 작가는 대학 전공이 없는 고졸이다. 그러나 두 번의 자퇴 이후 공무원 시험과 카페 알바를 병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고 있고 이를 토대로 책을 집필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인생을 산다. 똑같이 살 수 없다. 누구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한다. 나도 단지 어떠한 전공을 졸업한 학문적 타이틀의 소유자보다 타인과 확연히 다른 경험을 가진 소유자가 되고 싶다.


pg 103. 요즘도 그런 대리만족이 있다.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 아니면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이룬 이들을 쉽게 바라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경찰이라고 치면 나오는 수많은 제복 입은 경찰관들은 나를 대리만족시킨다.     

대리만족은 자극제이며 동시에 미련이다. 운동을 좋아하기에 인스타에 등장하는 몸짱 형님들의 사진을 보며 감탄한다. 나와 비슷한 젊은 나이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멋진 제복과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동경한다. 그런 영상들은 자극제이며 동시에 미련이 된다. 스스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자극제가 되어 인스타 속 인물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하거나 과감히 제쳐두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본 게시물들은 미련이 되어 날 공격한다. 게다가 항상 이런 미련은 선택한 지금의 삶 속에서 짝 주춤할 때 그리고 선택에 대한 믿음이 느슨해질 때 다가온다.     


pg 147. 내가 손으로 잡으려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숨이 차서 그런 걸까 그래도 막힌 숨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중이야.     

손으로 잡으려 하는 것들이 많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게 많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 까 의심된다. 갖고 있는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벅찬 일일 것 같다. 그러나 지금 하고 싶다고 느낀  것들을 이루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했다고 물었을 때 부끄럽지만 아니 아직 그만큼 노력했어라고 대답할 수 있기에 포기할 수 없다.



이런 에세이 단편을 책으로 구매해서 읽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어떤 동기부여 영상이나 책들보다도 더 자극되는 느낌이다.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도 주변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르침을 받기 보다 마음속에서 “청춘” 두 단어가 떠오른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로서는 재밌게 읽어내려 갔다. ‘역시 누구나 고민하고 헤매는구나.’ 작가는 초록 앞치마를 두루고 경찰을 꿈꾸지만 난 지금 초록 군복을 입고 무지개 빛 청춘을 꿈꾼다. 무지개색만큼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언제나처럼 자신감을 갖는다 왜냐하면,     


 

뭐가 됐건 우린 각자 인생이란 영화 주인공, 무비스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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