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가우디를 닮은(?)
앞전에 이시오스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글에서 한 번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칼라트라바는 명실상부 현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규모가 소소하긴 하지만 스페인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북부 스페인에는 칼라트라바의 대표적인 건물들이 꽤 있는 편입니다.
칼라트라바는 스페인 밖에서도 이미 상당히 이름을 알린 세계적인 건축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911 테러가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세계 무역 센터 역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은 역의 내부 공간 치고는 꽤 광활한 광장과 같은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의 갈비뼈와 같은 구조 아래 새하얀 공간 속에 상점가가 줄지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 공간을 지나다닙니다. 칼라트라바는 이 공간을 설계할 때 어떤 사람들이 주로 이 공간을 지나다니게 될지를 상상해 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좁은 집에서 나와 이 장소를 거쳐 또다시 네모난 공간 속의 사무실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개방감을 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역의 외부 역시 새하얀 색으로, 날개를 펼친 비둘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글의 부제가 ‘여러모로 가우디를 닮은(?)‘인데, 특히나 구조적인 것에 집착하는 칼라트라바의 많은 작품들이 저에게는 마치 가우디의 카사바트요 혹은 카사밀라 내부의 부드럽고 원만한 기둥같이 느껴져서인 것 같습니다. 가우디와 칼라트라바 작품의 뼈대들은 인공의 것이 아니라 마치 아름다운 골격을 가진 동물의 뼈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가우디와 칼라트라바의 닮은 점을 꼽자면, 건축주에게 거의 빠짐없이 소송을 당했다는 것인데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공사 기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 따라서 불어난 공사비를 달라, 못 준다 늘 소송이 붙었던 가우디처럼 칼라트라바도 대부분의 건축주들과 소송을 벌였습니다. 위에 소개한 세계 무역 센터 역 역시 원래 예정되었던 공사기간에서 7년을 훌쩍 넘기고 완성되었죠.
여러모로 유명한 칼라트라바의 또 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베니스의 ‘코스티투치오네 다리 Ponte della Costituzione’입니다. 코스티투치오네 다리는 베니스의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네 번째 다리이며, 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하루에도 수많은 통행량을 자랑합니다. 유리로 만들어진 이 우아한 다리는 고전적인 베니스의 풍경 속에서 세련미를 뽐내지만 역시 이 다리를 완공하고 난 후 칼라트라바는 베니스 시에게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캐리어를 끌고 지나다니는 베니스에서 이 유리 다리는 너무도 쉽게 파손되었기 때문이죠. 더군다나 물이 젖기라도 하면 너무나 미끄러워 다리를 개통하고부터 매일같이 부상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칼라트라바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캐리어를 끌고 지나갈 것인지 베니스 시가 미리 예측을 해서 자신에게 알려줬어야 한다고 대응했지만 법원은 당연히 베니스 시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베니스 같은 유명 관광지에 캐리어를 끄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은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일이라 당연히 건축가가 예상하고 계산했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죠. 베니스 법원은 칼라트라바에게 7만 8,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는데 납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리의 개통 이후 지금까지 수리, 보수 비용만 400만 유로 이상이 들었다고 하니, 그 벌금을 받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네요.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 지역에 새로 개통한 ‘메디오파다나역 Stazione Mediopadana’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칼라트라바의 너울‘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멀리서 바라보면 레지오 에밀리아의 평야 위로 아름답게 물결치듯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개장 첫날 하필이면 비가 왔고 그 비가 역 내부로 새는 모습이 역의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목격되면서 이후 담당 공무원에서부터 수많은 관계자들이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아래는 빌바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칼라트라바의 작품들입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이 다리의 이름은 ‘주비주리 Zubi Zuri’로, 바스크어로 ’ 하얀 다리‘를 뜻합니다. 네루비온 강을 걸어서 건너는 다리입니다.
곡선의 각도가 멋있죠.
이전에 소개했던 이시오스 와이너리 역시 칼라트라바의 작품입니다. 이 와이너리를 처음 봤던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한 발짝씩 다가갈수록 뒤의 칸타브리아 산맥처럼 웅장한 매력을 갖고 있는 건물이었는데, 이 역시 완공 직후 건축주들에게 소송을 당했습니다. 비가 샜거든요. 칼라트라바는 보수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건축주들은 다른 건축가에게 보수를 맡기길 원한다며 그 비용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빌바오 공항입니다. 건물 전체를 외부에서 찍기는 어려웠지만, 내부의 구조물들과 곡선의 벤치 등이 칼라트라바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칼라트라바는 어쩌면 건축가라기보다는 조각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을 현대의 기술과 재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지도요. 무엇보다도, 개장하자마자 비가 새는 건물은 너무 앞서가는 건축가를 선택하는 너무 앞서가는 건축주들의 숙명인 걸까요. 문득 르코르뷔제의 빌라 사보아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