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_3

살아보니 그래도, 삶은 꽤 괜찮았다고

by Art Around

아버지가 이룬 집 밖의 세상이 한없이 두렵기만 했던 부르주아에게 더없는 안식처가 되었던 남편 로버트 골드워터는 1973년,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루이스 부르주아는 남편의 셔츠, 손수건, 남편이 쓰던 이불 등 모든 종류의 패브릭을 버리지 않고 모아둡니다. 천과 실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의 유년에 깊이 관계하고 있죠. 마치 거기에 스며든 남편의 온기를 봉인하듯 그것들을 모아두었던 부르주아는 1990년대부터 그것들을 이용한 작품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된 이 작품 역시 남편 골드워터의 손수건에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이라고 자수를 새긴 1996년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962년의 작품으로, Lair(은신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당시 부르주아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정신 분석에 집중하면서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점점 본격적으로 작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당시에 그녀는 1940년대에 했었던 Personage 시리즈에서 영역을 넓혀 좀 더 본격적인 조각 작업을 전개해 나갔는데, 단순히 나무를 조각하던 것에서 발전하여 레진이나 석고, 라텍스와 같은 부드러운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던가 캐스팅을 이용하는 것으로 작업 영역이 넓어졌으며 단순한 인간 형태의 묘사에서 좀 더 추상적인 형태로 점점 발전해 나가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1960년대의 몇몇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들은 '은신처'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마치 동굴 같기도 하고 둥지 같기도 한 이 작품들은 은신처의 보호적이면서도 구속적인 양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Repairs in the Sky라는 이 작품의 제목을 따라서 챕터 3의 제목이 지어졌습니다. 챕터 3에서 부르주아는 치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에 관련된 작품에는 피, 상처, 우울, 죽음 등을 나타냈던 이전 작업에 자주 쓰였던 붉은색과는 달리 치유를 상징하는 푸른색을 쓰고 있습니다. 위 작품은 금속으로 된 찢어진 판의 구멍들을 실로 꿰매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 구멍의 뒤는 하늘색 천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미 생긴 상처는 마음속에 단단히 굳어져 더 이상 아물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 상처를 기우는 실과 천은 그에 비해 너무나 연약해 보이지만 절대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고 어떻게든 치유해보려고 한 부르주아의 치열하고 처절한 투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조그만 ‘Couple’ 작품은 2001년에 제작된 것으로 뉴욕의 한 개인 소장가의 소장품입니다.

부르주아는 1990년 중반부터 200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거미 모티브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제작했습니다. 한국의 호암 박물관과 모리 미술관이 있는 롯폰기 힐즈, 그리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 있는 ‘마망’이라는 이름의 큰 거미 조형물이 아마도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일 것입니다.

사진의 작품은 Spider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작품을

보면 부르주아의 거미 시리즈뿐만 아니라 ’Cell’ 시리즈와의 관련성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커다란 거미는 나일론 천으로 칭칭 동여매진 유리로 된 알 3개를 품고 있습니다. 이 알을 품고 있는 알 주머니는 또다시 커다란 철창(cell)으로 둘러싸여 있고 거미는 보호하듯 기다란 다리로 이 방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부르주아에게는 어머니를 연상하게 하는 물건들입니다. 철창 안에 매달려 있는 향수는 부르주아의 어머니가 즐겨 쓰던 것이라고 합니다.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태피스트리 복원 공방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상징이기도 하며, 자신 속에서 여러 가지를 끄집어내며 그것으로 작업을 하던 본인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부르주아에게 나무와 관목을 특이한 형태로 다듬는 토피어리라는 장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상징적인 필연성과도 같았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한쪽 다리 밖에 없는 목발을 짚은 여성의 팔과 머리에서 가지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가지 끝에 피어난 것은 비즈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푸른색의 꽃다발들로, 여성성과 풍요로움이 피어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한쪽 가지에 걸려있는 눈물 모양의 둥지는 부르주아의 초기작인 Fée Couturiére(1963)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작품은 아무래도 예술적인 작업을 통해서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승화시킨 작가 부르주아 자신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장의 마지막 작품은 지금까지 와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몽실몽실한 분위기의 Clouds and Caverns입니다. 구름과 동굴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앞의 반원들은 포근한 구름처럼, 뒤의 반원들은 마치 이제 막 빠져나온 어두운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부르주아에게 삶의 대부분은 상처였고 또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집과 가족은 안식처이자 철창이었고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 또 그곳을 지키기 위해서 - 누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주어지는 그것들을 위해서 죽을 만큼 용기를 내야 했고 피를 흘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인생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was wonderful, 이라고.

가까이에서 보면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큰 비극들이 멀리서 보면 수많은 작은 조각의 비극이고 더 멀리서 보면 결국은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루이스 부르주아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