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래도, 삶은 꽤 괜찮았다고.
루이스 부르주아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통제불능한 감정들을 경험하며 자란 탓에 대학에서는 이성적이며 명확한 답이 있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의 인생에는 큰 영향을 미친 세 번의 죽음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남편인 골드워터의 죽음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몸이 약하던 부르부아의 어머니는 1932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부르주아는 수학을 그만두고 예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곧 파리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를 만나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챕터 1과 챕터 2 사이에 있는 작은 전시실에서는 이 시절의 부르주아의 작품을 다룹니다.
이 시절의 작품들은 “Femme Maison” 시리즈라 불립니다. 불어로 여성을 뜻하는 Femme, 집을 뜻하는 Maison이 합해진 말인데 부르주아는 여성, 혹은 어머니를 곧 집, 혹은 가족과 동일시해서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떠난 집은 무너진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집을 떠난 여성을 무기력하게 무너진 모습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던 감정은 오히려 집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집이라 해도 떠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결혼을 해서 파리의 집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 것은 마치 죽음 뒤에 존재하는지 아닌지조차 의문인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처럼 부르주아에게는 정말 큰 결심이었습니다.
이 시절의 그림들에서 여성의 신체는 곧 물리적인 집 그 자체로 표현되곤 합니다.
챕터 2의 제목은 I have been to hell and back, 나는 지옥에 다녀왔다, 입니다. 이 챕터에서 부르주아는 본인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과 두려움들을 좀 더 용감하게 드러냅니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1951년 세상을 떠납니다. 증오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보다도 더 강하게 부르주아에게 영향을 미쳐 부르주아는 오랜 시간 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헤어 나오기 위해 말 그대로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려야만 했습니다.
Culprit Number Two(범죄자 no.2)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높은 벽 안에 아이용으로 보이는 작은 의자가 벽을 향해 놓여있습니다. 그 앞에는 마치 자신의 잘못을 피하지 말고 똑바로 보라는 듯이 거울이 놓여있습니다. 성인에게는 자아성찰을 의도할지 모르겠지만 앞의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법한 크기의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부르주아가 1990년대에 시작한 “Cell” 시리즈에 속합니다. Cell은 작가에게 내밀하고 개인적인, 혹은 고독하고 고립된 공간을 의미합니다. 부르주아는 이 시리즈를 두고 “좌절이나 고통에 형태와 의미를 부여했다 “, “고통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구제책이나 변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뿐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작업들은 부르주아의 정신적인 몸부림과 억누를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Cell X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자화상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철창 속에는 여기저기 기워진 붉은색 천으로 된 얼굴이 있습니다. 붉은색은 부르주아에게는 피, 고통, 폭력, 수치심을 상징했습니다. 언뜻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보이는 이 얼굴은 다시 보면 무해해 보이고 싶다는 듯 억지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
보이기도 하며 상처받기 쉬운 내면과 친밀감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챕터 2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아버지의 파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부르주아의 어느 날의 꿈 혹은 상상에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식사 시간에 아버지의 폭언 혹은 수치심을 주는 언행으로 순식간에 식탁의 분위기는 긴장되고 얼어붙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식탁에 같이 앉은 누군가가 아버지를 식탁에 올리고 누군가는 팔과 다리를 잡고 아무 말 없이 서로 미리 계획이라도 짠 듯 아버지를 하나하나 해체하여 식탁 위에 올려놓고 나서야 그 긴장된 분위기는 해제되고 모두들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식탁에 앉았다, 고 부르주아는 이야기했습니다. 동그란 형체들 가운데 위치한 이것은 식탁이기도 하도 침대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커플 IV”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부르주아의 작업에서 커플이라는 주제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어느 날 부르주아는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군인이 의족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르주아는 커플을 남녀 간의 관계보다는 이 군인과 의족 같은 관계로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꼭 맞춰져야 하나로 기능하는 것처럼, 반대로 생각하자면 둘 중 하나가 없다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