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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베이커 Oct 08. 2023

[아트 한입] 서울에서 찾은 1134색의 경계와 범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 박미나《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01 이번 주말 에르메스에 가야 하는 이유

The Reasons to Visit Hermès This Weekend


박미나(Park MeeNa),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2023. ART BAKER


아뜰리에 에르메스(Atelier Hermes)에서 지금 박미나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가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는 오늘, 10월 8일까지입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로 발걸음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박미나의 아홉 개의 색만큼이나 다채로운 예술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외국계 기업 에르메스는 한글로 명명한 "미술상(Missulsang)”을 앞세워 2000년부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현대미술을 꾸준히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02 서울의 모든 색을 수집하다

Collecting All the Colors of Seoul


Park MeeNa, 2023-Color-Color List, acrylic on silkscreened paper, 84 x 60 cm © 2023. ART BAKER


회화가 단순히 예쁜 벽지가 되는 것을 거부했던 박미나(b.1973-, Park Meena)는 1999년 이래 '집(House)', '하늘(Sky)', '색칠공부 드로잉(Coloring Book Drawing)', '색채 수집(Color Collecting)', '스크림(Scream)', '딩벳 회화(Dingbat)' 등 개념적으로 새로운 회화 연작을 다수 선보여 왔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기호 게임으로서 단순해 보이는 도상이나 색상 팔레트 이면에 인지 심리학, 미술교육, 미술사, 컴퓨터 언어, 하위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문화적 맥락을 내포합니다. 색채 수집은 그들 작업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자 작가의 습벽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회화용 물감에서부터 가정용 페인트, 색연필, 볼펜,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안료를 망라하는데요. 그런 색채 수집 행위를 집약한 가장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결과는 이번 전시의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2023) 연작으로 드러납니다.


Park MeeNa, 2023-Color-Color List, acrylic on silkscreened paper, 9 each, 84 x 60 cm, 2023©ART BAKER


박미나는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연작을 위해 작가는 블랙(black), 블루(blue), 그린(green), 레드(red), 오렌지(orange), 바이올렛(violet), 화이트(white), 그레이(gray), 옐로(yellow) 등 9가지의 명칭으로 분류되어 국내에서 유통되는 아크릴 물감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수많은 물감 색상의 종류만큼이나, 각 색상을 지칭하는 이름도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왜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라며 이름에 담긴 이야기와 역사를 생각하게 하는 이름과 색상과 딱 들어맞는 작명 센스가 돋보이는 이름도 눈에 들어옵니다. 색의 이름과 함께 네모 칸 안에 붓질로 칠해진 물감을 보는 것도 전시 관람에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03 1cm 간격의 1,134 색 띠에 쌓인 시간

The Time Accumulated on 1,134 Color Strips With a 1cm Interval


2023-Yellow-Wardrobe, acrylic on canvas, 257 x 304 cm©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2023. ART BAKER


박미나의 색을 탐구하기 위한 여정은 20년 전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 한 갤러리스트가 "박미나 작가님, 혹시 오렌지"라며 <오렌지 페인팅>이 있냐고 물은 문의에 작가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물감을 수집하여 스프라이트 페인팅을 제작했습니다. 2004년 ‘아홉 개의 색’과 ‘아홉 개의 가구’로 구현된 바 있는 이 연작은 작가 박미나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Exhibition View,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2023. ART BAKER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였던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는 높이 2m가 넘는 대형 연작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총 1,134종의 물감을 제조사 순서대로 1cm 두께의 스트라이프로 칠했습니다. 레드(red), 옐로(yellow), 블루(blue) 등의 아홉 가지 색상 군과 아홉 개의 가구의 형상을 매칭한 작품을 구성하였습니다.


2023-Blue-Bed, acrylic on canvas, 257 x 229 cm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2023. ART BAKER


작가는 처음 색을 탐구했던 2000년대 초반보다 지금 아크릴 물감의 색상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색상군에서 전혀 색을 섞지 않고도 상당히 많은 물감의 개수만큼이나 각 물감이 가진 고유의 농도와 질감, 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제각각입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색상도 있기 마련이고요. 그렇기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차이는 각자의 개성 넘치는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 다채로운 스트라이프를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04 시간과 노동력의 기록

A Record of Time and Labor


Park MeeNa, 2023-Orange-Sofa, acrylic on canvas, 257 x 133 cm © 2023. ART BAKER


박미나는 회화의 기본 요소인 색채와 형태에 반영된 동시대의 사회 문화적 메커니즘을 집요하게 탐문해 왔습니다. 박미나는 지난 20여 년간 일련의 조사 연구 활동을 통해 시판되는 물감과 통용되는 도안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특유의 시스템에 기반한 회화로 표현해 왔습니다. 그런 그의 작업 방법론은 회화의 형식에 대한 새로운 비평적 대안이자 동시대의 사회학적 리서치로 평가받습니다.


Exhibition View,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 2023. ART BAKER


반복적으로 지속되어 온 여러 회화 시리즈들과는 달리 2004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 이후, 무려 19년 만에 같은 형식으로 재개하는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 (2023)는 전작과의 형식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물감과 관련한 산업 시스템과 물감의 명칭으로 지시되는 사회적 규약, 더 나아가 그림의 용도와 한국의 주거 문화의 수준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시차만큼의 가시적인 변화를 내포합니다.


2023-Black-Coffeetable / 2023-Red-TV Unit, acrylic on canvas, 257 x 229 / 247 cm © 2023. ART BAKER


작품 속 색 띠 아래에는 럭셔리 잡지에서 찾은 실제 고급 가구를 차용한 가구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파트의 표준 천장 높이였던 23cm에 맞춘 227cm의 사이즈로 작업했던 초기작과 달리 지금은 고급 아파트 층고에 맞춰 작품의 높이를 30cm 높였습니다.


MEENA PARK © Artdrunk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공장 생산물인 물감을 혼합하지 않은 채 정한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적용한 스트라이프와 가구 판매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도형으로 구성된 박미나의 회화는 레디메이드 또는 미니멀 아트에 근접합니다. 박미나는 작품에서 어디에 서서 어느 각도에서 언제 기록했는지와 같은 최대한 세세한 정보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처럼 유효한 좌표를 명확히 하여 스스로를 최대한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는 박미나의 작업은 회화의 조건에서 최대한 멀어진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박미나의 작업은 무려 1,134 종의 물감을 붓질로 거듭 칠하는 노동 집약적인 결과물이자 물감과 재현의 역사에 대해 질문하는 ‘회화에 관한 회화’로서 깊은 성찰의 의미를 가지며 비평적 회화로서 그 역할을 다합니다.




05 기준과 경계, 범위는 무엇일까

What Defines The Standards, Boundaries, and the Scope?


Park MeeNa, 2023-Red-TV Unit, acrylic on canvas, 257 x 247 cm © 2023. ART BAKER


기준과 경계, 범위와 영역을 질문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레드라고 말할 때,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레드라고 부르는지, 전시 공간과 생활공간의 영역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풀어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객관적이며, 주관적인 것일까요?


박미나는 '내가 정할 수 없는, 기업 혹은 사회에 의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정해져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범위에 대한 궁금증을 다룹니다.



박미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Nine Colors & Nine Furniture)>
기간: 2023년 7월 28일 - 10월 8일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7,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B1F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관시간: 오전 11시 – 오후 7 시
매주 수요일 및 추석 연휴 (9월 29일, 30일) 휴관
전시문의: +82-2-3015-3248 / hyejo.yum@hermes.com



참고문헌


https://www.hermes.com/kr/ko/content/maison-dosan-park/atelier-hermes/28072023/






© 2023. ART BAKER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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