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감상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야기
작가: 빈센트 반고흐
제목: 양귀비 들판 (1890년 6월)
크기: 73.0 x 91.5 c
2012년 어느 날 이 그림을 보면서 남몰래 눈물을 주르륵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2011년 5월 미국 필라델피아 낯선 타지에서 외롭게 공부하던 시절 어여쁜 딸아이가 태어났다. 엄마 뱃속에서 힘겹게 나와 엄마 품에 안겨 목청 높여 울던 딸아이는 우리 두 가족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지만 혈연 한 명 없는 타지에서 부부 둘이 갓난아기를 키우는 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육아와 함께, 중간고사, 기말고사, 각종 크고 작은 논문들 준비로 많은 밤을 새워야 했기 때문에, 삶은 시간과 피곤과의 전쟁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반고흐 특별전은 극심한 가뭄의 물 한 모금과 같았다. 색감이 화려하고 붓터치가 생생한 인상파 이후의 작품들에 빠져있었던 나는 이상하리만큼 반고흐, 폴 고갱, 앙리 매티스, 조르주 루오, 앙드레 드랭 등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붓 터치들이 내 가슴에 그림을 그리는 듯 심장이 뛰고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2012년 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반고흐의 특별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와 아내는 10개월 된 아이를 아기 띠에 안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고 아내는 작곡을 전공했기 때문에, 고흐의 그림들을 보면서 철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의 연관성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나 혼자 신나서 떠드는 입장이었지만) 그 전시장 홀을 따라 중간쯤 지날 때 가로세로 1미터 남짓한 가로가 살짝 더 긴 붉은색의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양귀비 들판이었다. 그 그림을 보자마자 내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흐의 보통 그림보다는 조금 크다는 것과 붉은색의 점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는 없는 고흐의 평범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거친 질감과 녹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붓 터치들이 꿈틀꿈틀 살아나서 내 마음을 이리저리 뒤흔드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려 머질 것만 같았다. 오일물감의 반질반질하고 거친 질감과 산발적으로 흩뿌려진 붓 터치들의 방향들이 내 시선을 끌어당겨 그 그림의 구석구석을 휘몰아치며 끌고 다녔다.
육아와 학업의 힘든 삶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흐의 고단했던 삶의 결과물인 그림이 주는 숭고함 때문이었을까? 10개월 된 아이를 안고 그림 앞에 서서 남몰래 한참을 울었다. 아직도 이 그림이 준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반고흐는 평생 수많은 인물화를 수작으로 남긴다. 특히 초기에는 <감자 먹는 사람들, 1885>과 같은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1890년에 그린 <의사 가셰의 초상>이나 자화상 등 많은 인물화를 그렸다. 그가 정물이나 풍경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유는 뭘까? 평생 그림 한 점 팔지 못해 동생 데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고흐, 바로 돈 때문이었다. 고흐가 1886년에 자신의 친구인 호라스 리벤스 (Horace M Livens)에게 쓴 편지에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모델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 거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꽃들로 정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남부에서 그 당시에서 가장 흔했던 꽃이 양귀비이다.
그런데 인생의 아이러니인지 운명인지, 돈이 없어 필연적으로 선택한 정물화를 그리는 동안 그의 그림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정물들을 그리면서 보색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고, 결국 그의 그림에 색감이 풍부해지고 보색대비로 인해 강렬한 색들이 진동하는 듯한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완성하게 된다. "서로가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색들이 있다. 그것들은 짝을 이루는데 남자와 여자처럼 서로를 완성시킨다."2) 평생 여자의 마음을 얻지 못해 괴로워했던 고흐가 남자와 여자의 비유를 들어 색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이 웃기기는 하지만, 색의 관계에서 그토록 완벽한 조화를 찾아낸 그의 환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고흐는 노랑과 보라, 오렌지 빨강 그리고 녹색 등 보색을 나란히 배열해 회색의 조화보다는 보색의 강렬함을 그렸다.
<양귀비 들판>에서는 녹색과 빨강의 붓 터치들이 서로 쌓이면서 뒤엉켜 대비를 만들고 꽃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강렬한 들판을 만든다. 그 전시회에서 내 눈에 눈물이 난 이유는, 녹색의 편안함과 붉은 양귀비의 강렬함이 어우러져 육아에 지쳐있던 나에게 알 수 없는 짜릿함과 평안함을 주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