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림
시카고에서 공부하던 시절 시카고 미술관에 매일 들르곤 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해 주던 그림 "파리의 비 오는 거리". 크기가 꽤 커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그림의 주인공들과 같이 거리를 걷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카고에서 걷는 파리의 거리랄까. 이 그림의 잔잔한 분위기에 빠져 한참을 바라보곤 했었다. 파리 거리의 바닥 움푹 들어간 틈에 고인 빗물은 우중충한 비 오는 날이라기보다는 마치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 빛을 바라보는 듯 찬란하게 빛이 난다.
출근길 운전을 하며 빗속을 달리다 문득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 생각났다. 창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마치 카유보트의 그림 속 돌길 사이사이에서 하늘빛을 반짝반짝 반사하는 고인 물과 같았다.
이 그림은 시카고 미술관 입구를 들어가 전시장에 입장하면, 제일 먼저 관객들을 맞이하는 그림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이 가득한 홀 중앙을 가로 세로 2미터를 훌쩍 넘는 커다란 그림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왜 좋은 그림인지 알지 못해도 이 그림은 자연스레 많은 관람객으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한다. 관람객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남들처럼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 또한 시카고에서 거주하면서 6개월 정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아트인스티튜트엘 들러 이 그림을 봐 와서인지 이 그림은 나에게도 매우 친숙하다. 하지만, 그때는 나 또한 구스타브 카유보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후기 인상파 이후의 실험적이고 표현적인 작품들에 빠져 있어서 카유보트의 사실적인 고요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은은한 색감과 사진을 보는 듯한 시원한 구도 그리고 돌 길에 고인 물의 사실적인 묘사가 아름다웠던 거로 기억이 남는 작품이다.
이른 아침 차창 위로 자작자작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이 그림이 떠올랐다.
이 그림의 작가인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이다. 군용 천 사업가이자 법관이던 아버지로부터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해 경제적 근심 없이 그림을 그린 화가였으며, 동시대 가난한 동료 화가들의 그림을 매입하며 경제적으로 도왔던 수집가이기도 했다. 0.1 퍼센트의 부르주아로 태어나 막대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가난한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존중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버린 지성의 화가였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두 계급이 얽히고설켜 이념의 충돌이 빈번하던 과도기 시대에 양극의 두 면을 가감 없이 보며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인간적인 화가였다. 귀족들 삶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을 또한 사실적으로 묘사해 일부 그림은 그 당시 살롱을 주도하던 귀족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귀족의 삶을 각종 미사 기법을 사용해 포장했다면, 카유보트는 동시대의 진실한 시대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당시 사진술에 주로 사용되었던 원근감이 더해져 그의 그림에서 사실성은 극대화되었다.
그 대표적인 그림이 카유보트의 걸작 중 하나인 "마루를 깎는 사람들 (The Floor Scrapers) 1875"이다. 처음, 이 그림이 1875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공모전에 출품됐지만, 배심원들은 노동자를 주제로 다룬 주제의 부적절성과 상의 탈의한 노동자 천박성을 이유로 이 작품을 선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해 크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비평가들 사이에는 그의 그림의 주제를 두고 호불호의 논란이 있었다. 인상주의 작품들과 비교해 지나치게 강조한 원근감과 노동자들의 생생한 노동 현장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비평가들이 이 그림을 불편해했던 진짜 이유는 그들 자신의 이면성(가식)이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귀족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삶의 모습뒤에 숨겨진, 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카유보트의 그림이 귀족들에게는 가시와 같았을지 모른다. 창문을 통해 스며드는 따사로운 빛은 마루를 환하게 비추는 듯하지만, 이 빛을 등지고 일하는 마루를 깎는 사람들에게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고양이 자세로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뻗어 마루를 깎는 모습은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머금고 있다. 그 당시 귀족들의 삶을 조명했던 르누아르나 모네의 그림 속 환희나 기쁨은 이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림 역시 그 시대의 노동자들 삶을 조명한다. 숨기고 싶은 동시대 귀족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작품은 그 시대를 진실되게 보라는 귀족들을 향한 카유보트의 고요한 외침 같다.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은 <마루를 깎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중산층쯤 되어 보이는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파리의 거리를 걷는다. 귀족 도시의 느낌이 들게끔 색채 또한 울트라마린을 주로 사용하여 차분하면서 고급스러운 파리의 거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우선 이 그림의 배경은 19세기 프랑스 거리 파리 생 라자르 역 근처인 더블린 광장이다. 이 전까지 파리는 중세도시의 모습을 탈피하지 못해, 좁은 길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극심한 교통체증과 전염병 창궐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던 도시였다. 이 그림 속 더블린 광장의 세련된 모습은 1853년에 파리의 지사 자리에 오른 오스만 남작(Baron Haussmsnn)이 파리 개조사업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도시계획이 이뤄진 개발 후의 모습이다. 오스만 남작 이전에는 주로 군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개발사업이 외관 장식에만 치우쳐 있던 반면, 오스만은 미와 실용을 동시에 충족시키고자, 도시 체계, 녹지 조성, 미관 관리, 도시 행정에 이르는 도시의 건설과 운영에 관한 모든 것들을 개조한 매우 성공적으로 파리 도시개조사업을 이끌었다. 그림에 보이는 고층 건물은 귀족의 부를 상징하는 저택이 아닌 중간 계급들이 거주했던 다세대 주택의 모습이다. 2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이 그림 속 파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오스만 남작의 업적이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서, 사실 이 그림의 위대함은 인물의 크롭, 심도의 깊이, 색 수차 등 다양한 사진촬영 기법을 그림에 담아낸 데에 있다. 현재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의 큐레이터 Gloria Groom은 이 그림을 "the great picture of urban life in the late 19th century (19세기 후반 도시 삶을 보여주는 위대한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과 깨끗이 정리된 파리의 거리. 하지만 여전히 적막이 흐르는 삭막한 도시. 주 피사체인 우산을 든 두 연인마저 말이 없다. 내리는 비에 흐릿한 하늘은 도시 삶의 쓸쓸함을 더한다. 카유보트는 어쩌면 그 당시 도시 삶의 화려함 이면에 공존하는 도시인들의 외로움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이면, 다정히 우산 하나를 나눠 쓴 연인과 파스텔 색조의 잔잔한 파리의 거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구스타브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