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해방시킨 화가
발튀스 (본명: 발타자르 클로소프스크 데롤라) 1908 ~ 2001
본명은 발타자르 클로소브스키 데 롤라(Balthazar Klossowski de Rola)로 발튀스는 파리에서 출생하고 스위스, 파리에서 공부한 프랑스 화가이다. 생전에 루브르 컬렉션에 작품을 등록한 작가로 알려졌다. 그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기르던 고양이의 죽음을 마주한 후 고양이에 대한 어린 소년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40점의 드로잉을 엮어 <미츄> (1921)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열여덟 살에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초기 르네상스 대가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가 추구했던 원근법과 공간기하학적 구도에 영향을 받아 발튀스의 작품 또한 신체 각 부분의 원근법적 표현과 기하학적 배치로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발튀스는 파블로 피카소나 앙드레 브로통과 같은 그 당시 주류 화가와도 교류가 있었으나 표현주의나 야수파 등과 구별되어 사실적이고 소박한 독자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사실적이나 적당한 단순화로 꿈에 나올법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 인간의 심리적 모티브를 표현했다. 발티스가 자주 그렸던 관능적인 사춘기 소녀 그림은 소녀가 취한 포즈나 표정에서 소녀의 심리상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어린 소녀의 은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듯하다. 이를 보는 관객은 마치 관음증에 걸린 듯 숨을 죽이며 쉬고 있는 소녀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게 된다.
그의 관능적인 소녀 그림은 외설과 소아성애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발튀스가 10대 사춘기 소녀를 주 작품 소재로 삼고 속옷이나 때로는 가슴과 음부 등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작품은 <꿈꾸는 테레즈 (Dreaming Therese), 1938>이다. 12~13살의 어린 테레즈를 그린 10여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짧은 치마를 입고 한 다리를 들어 올려 두 다리를 드러낸 체 나른한 듯 소파에 기대어 포즈를 취한 소녀 이미지가 사춘기 소녀를 성적 대상화하여 소아성애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튀스는 이 외설 논쟁에 “나는 소녀를 그린 것이 아니라 천사를 그렸다”라고 말하며 외설 논란을 부정한 바 있다.
재미있는 사건으로는, 2017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 중일 때 하비와인스틴 등 미국 정치 연예계에 불어 닥친 “미투” 성폭력 폭로로 성착취 문제에 대한 사회 민감도가 극도록 상승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메트로폴리탄에 걸린 발튀스의 <Dreaming Therese, 1938>에 불똥이 튀었다. 뉴욕에 거주 중이던 미아메릴(30)은 발튀스가 사춘기 소녀들에 심취했고,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며 이 작품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은 관음증을 낭만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철거 서명운동을 시작해, 8500명의 서명을 받은 사실이 있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은 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의 사명은 전 시대와 문화에 걸친 뛰어난 작품들을 수집, 연구, 보존, 전시해 사람들을 창조성, 지식, 아이디어와 연결하는 것”이라며 작품을 철거하지 않았다. <<뉴욕포스트>>
발튀스의 소녀 그림은 잔잔하고 부드럽다. 소박하고 순진무구하고 유치하고 유아적이다. 미끄러지듯 흐르는 볼륨 없이 가느다란 인체의 윤곽선은 순정만화의 인물묘사 방식과 유사하여 소녀 감성을 극대화한다. 플레이보이에서 나올법한 여성의 육감적인 어필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때 묻지 않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구한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심리에 드러난 세상과 문명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담겨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표정과 의도를 알 수 없는 소녀의 포즈에서 나오는 조형적 긴장감이 주는 아름다움에서 오히려 사춘기 소녀의 심리적 불안정함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체적 유아성이 두드러진다. 외설 논란은 조연에 머물러있던 소녀라는 소재를 주인공으로 격상시킨 데 대한 무의식적 거부감에 기인한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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