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어느 봄날을 같이 즐긴 팀원들에게

글: 세잎클로버


모두 잘 지내지? 갑자기 웬일이야 하겠네.


너희와 함께한 시간들이 문득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어. 너희는 – 지금도 그렇지만 - 개성이 넘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유머가 가득했어. 그래서인지 일이 매우 힘들었지만, 상당히 즐겁게 일했지. 봄을 보내면서 항상 떠오르는 즐거운 추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가 함께했던 짧은 봄나들이(?)라, 그림 하나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려 볼까 해.


정선, <필운대상춘>, 비단에 수묵담채, 1740~1750년대, 27.5 x 33.5 cm, 개인 소장


겸재 정선 하면 ‘진경산수화’가 탁 떠오르지? 정선은 그동안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여 중국의 산수를 그리던 데서 탈피해 우리나라에 실제로 있는 풍경을 그리는 새로운 화풍, 진경산수화를 개척했어. 이 진경산수화에는 단순히 산천을 현실적으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독자적인 사상과 이념, 정취를 바탕으로 조선의 산수를 재창조했다는 높은 의의가 있지. 정선은 자신이 머무르고 다녔던 곳을 그려 왔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인왕산이야. 정선의 가장 대표적인 그림인 <인왕제색도>의 배경 말이야.


정선, <인왕제색도>, 종이에 수묵담채, 1751, 79.2 x 138.2 cm, 호암미술관 소장

위에 있는 그림 <필운대상춘>의 배경도 인왕산이야. ‘필운대’는 인왕산 남쪽 아래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자락인데, 조선의 명재상인 백사 이항복의 집터로도 알려져 있지. 이곳은 그리 높지도 않은 데다가 평평한 바위가 많고 봄에 꽃이 많이 피어서, 봄나들이를 즐기는 선비들의 핫 플레이스였대. 봄놀이를 한자로 쓰면 바로 ‘상춘’이라나? 그래서 이 그림은 ‘필운대에서 봄놀이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지.


그림에는 8명의 선비가 필운대에서 봄의 경치를 감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시중드는 아이 두 명이 있는 것을 보면 시를 지어 발표하는 시회를 하러 온 모양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목구비도 안 보일 정도로 조그맣게 그려져 있고,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구름처럼 가득한 꽃과 나무지. 소나무, 버드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봄날 주위에 이렇게 꽃이 핀 곳이 있다면 가슴이 마구 설레지 않겠어? 그때 우리가 그랬잖아.


햇살이 유난히 따사로운 날이었어. 뉴스에서는 활짝 핀 벚꽃을 아름답게 찍어 보여 주었지만, 직장인이 언감생심 꼼짝할 수가 있나. 게다가 그땐 야근이 일상일 때여서, 주말에도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꽃놀이는 꿈도 못 꾸었지. 그런데 다들 그랬던 모양이야. 팀 모두가 점심 먹으러 회사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봄 햇살에 마음이 들떠 버린 거야.


“우리 점심 밖에서 먹을까?”


역시 우리와 같이 들뜬 팀장님의 말씀에 우리는 “좋아요~” 하고 완전 동의했어. 그리고 회사 뒷산으로 향했지. 몇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뒷산을 그때 처음으로 올랐어.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에 숨이 차기도 했지만, 그냥 좋았던 것 같아. 답답한 회사를 벗어났다, 그것도 낮에!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회사 뒷산에 있는 정자에 올랐고, 사 가지고 온 점심을 풀어 놓았어. 사실 헷갈리는데, 짜장면과 짬뽕 그릇이 생각나. 그것이 우리가 시켜 먹었던 건지 정자에 먼저 들렀다 간 다른 팀이 시켜 먹고 놔두고 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그곳까지 배달이 온다는 거지. 하지만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는 건 확실해. 그땐 뭘 먹어도 맛있었을 거야. 따사로운 햇살, 살랑 부는 바람, 탁 트인 경치… 이런 것들이 다 맛있는 반찬이 되어 주었거든.



함께 밥을 먹었던 정자. 맞지?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끝난 다음, 우리는 정자에서 쉬면서 경치를 구경했어. <필운대상춘>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발아래 집들이 쫙 깔려 있었고, 저 멀리 나무와 벚꽃들이 보였어. 봄의 나뭇잎들은 아직은 연둣빛을 띠는 까닭에 멀리서 보면 더 아른아른해 보이지. 벚꽃들은 작은 꽃들이 점점이 모여 있는 까닭에 후 하고 불면 금방 흩어져 버릴 것 같았어. 그렇게 봄날을 짧게 즐기고 우리는 터덜터덜 산을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왔지. 그렇게 짧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순간순간이 소중했고, 너희와 함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



봄날은 유난히 짧게 느껴져. 봄에 새로 돋아나는 잎도 아직 다 크지 못해 여리고, 꽃들도 크지 않아 가냘파 보이지. 하지만 그 아른거리는 예민함이 따뜻해지는 공기를 흐트려뜨리나 봐.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그 공기를 따라 들떠 버리는 것이 아닐까? 짧은 계절, 예민한 계절, 그래서 더욱더 붙잡고 싶은 계절. 그 계절의 짧은 시간을 보낸 우리를 아름답게 추억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