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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봄과 해골 물

글: 다행


원래 ‘봄’이라는 말은 어감이 참 좋았습니다. 단어 자체에 포근함, 새로운 시작 등 왠지 설레는 느낌이 흘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 설레는 느낌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아마도 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봄이 오면 미세먼지도 함께 오는 게 당연시되었으니까요.



16세기의 봄도 이렇게 좋았다. 그나저나 언제 봐도 기가 막히네!
주세페 아르침볼도, <봄>, 캔버스에 유채, 1563년, 76 X 63.5 cm,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소장



그러다가 오랜만에 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코로나19’ 사태 때문입니다. 이 글이 게시될 시점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와 봄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이견은 있지만, 바이러스가 따뜻한 온도에 약해서 봄부터 진정되기 시작할 거라는 말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 너무 답답해 죽겠습니다. 안경과 마스크를 동시에 쓰는 것 자체도 불편한데, 저는 시민을 넘어 외국인 등 불특정 다수와의 접점에서 일하기에 감염 걱정이 매우 큽니다. 사람을 대할 땐 최대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접촉이 있고 나면 바로 손 세정제나 비누로 씻어 내지만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원래 사람을 대하는 일이 나름 즐거웠는데, 지금은 출근길이 편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이 사태가 시작되기 전, 지금으로부터 두 달 뒤에 출발할 이탈리아 직항 항공권을 기가 막힌 가격에 구매했습니다. 가격은 바로 짜잔! 71만 원대였지요!! 정말 기분 좋고 설렜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위약금과의 전쟁’에 돌입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한 달 이내에 취소하면 위약금이 20만 원에 ‘그치고’, 그 이후에는 더 늘어납니다. 위약금은 위약금대로, 가게 된다고 해도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야기된 여러 문제 때문에 삶의 질이 너무나 바닥입니다. 요새 재미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까지 스트레스 받지 말자구!
무라카미 다카시, <무제>, 실크스크린, 55 X 55cm, 개인 소장


그랬는데 말이죠, 갑자기 ‘원효대사 해골 물’처럼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매사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었던 겁니다. 물론 감염 자체와 금전적인 손실까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이겁니다. 최선은 다하되 불필요하거나 직접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는 걱정하지 말자는 겁니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쓰는 것만으로도 저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 이 상황에서 걱정을 더 한다고 덜 감염되는 건 아닐 겁니다. 오히려 걱정이 많으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더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위약금과 관련해서도 아직 한 달 가까이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 걱정한다고 이 사태가 제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으니 어두운 밤 물 한 사발 들이켰는데 아침에 해골을 발견하며 깨달은 것처럼 속이 편해졌습니다. 조금은 말이죠. 원래 변수가 많은 일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고, 아무래도 이런 방식대로 오래 살아온 게 있으니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 거예요. 이렇게 조금씩 바꿔 가면 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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