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 힐마 아프 클린트, 불교 미술
지난 주말 다녀온 강릉단오제에서 단연 흥미로운 것은 단오굿이다. 신통길놀이부터 시작된 강릉단오제의 굿은 장장 5박 6일 동안 진행되는데, 신과 사람 소통을 염원하는 '굿'이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 소통의 주관자인 사람들의 춤과 노래, 악기 연주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본능적으로 내제된 몸과 마음의 춤사위가 절로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제례를 올리고, 굿을 했던걸까.
어제 다녀온 호암미술관의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불교 미술 전시였다. 우리 나라의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불화부터 일본, 중국의 불화에 이르기까지 귀한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었다. 전시의 주제는 젠더적 관점에서 불화를 다시 보는 일이었는데, 그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더욱 근본적으로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당시 사람들의 마음들이 인상적이었다. 죽고 난 이후의 세상인 내세를 본 적도 없으면서 가고 싶어하고, 어떤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을 내세로 정성스레 데려갔으면 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또 어떤가. 미술이 '미술가가 자신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낸 빛을 드러내 보이는 행동'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힐마는 심령회 모임을 통해 직접적으로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어떤 초월적인 힘에 대해 진지하다. 그들의 예언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신뢰, 그것을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