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SICK_1
오후 3시, 아침의 다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오늘은 꼭 병원에 가보자. 다행이었다.
지난밤, 찾아보았던 몇 군데의 병원에 전화를 해봐야지.
검색창을 열고 검색어를 다시 넣었다.
‘ㅇㅇ 정신과’, ‘ㅇㅇ 신경정신과’
비교적 가깝고 번화한 지역을 지정하여 검색을 했다.
너무 먼 곳은 가기 힘들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운 곳은... 혹시라도 아는 이를 만날까, 동네 사람이라도 만날까 겁이 났다.
이 정도 거리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기에도 무리 없고, 주차가 가능한 곳이면 자차를 이용할 수도 있으며 번화한 곳이니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환자로 다닐만한 곳이고 그렇다면 아는 이를 만날 확률도 낮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으로 선택한 지역이었다.
간단한 후기와 홈페이지를 꼼꼼히 확인하며 한 군데를 선택해 전화를 걸었다.
“네~ ㅇㅇㅇ정신건강의학과 의원입니다”
“오늘 예약되나요?”
“오늘은 예약이 어려우세요. 당일 예약은 3시 이전만 가능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두 번째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과 다르게 씩씩하고 강인한 느낌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오늘 진료받을 수 있을까요? 4시 반 이후로요”
“초진이신가요? 재진이신가요?”
“초진이요.”
“음... 초진이시면 당일은 어려우신데, 예약하시면 내일은 가능하세요.”
“아... 오늘은 안되는군요.”
“오늘도 되긴 하는데, 그냥 오셔서 기다리셔야 해요. 많이 기다리실 수 있구요.”
“네, 일단 알겠습니다. 생각해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당일 진료가 힘든 곳이 대부분이었다.
과의 특성상 상담과 진료 시간이 길고, 거의 모든 환자가 예약으로 오다 보니 시간을 끼워 맞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초진이라면 더욱 파악해야 할 정보가 많다 보니 진료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고. 당일 펑크 난 예약이 있지 않는 한 초진 환자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에도 당일 예약이 안되어서 다음날로 예약을 해 두었다가 결국 가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당일 진료가 가능한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그곳을 가자. 그만 두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밤만 되면 우울의 늪으로 한없이 들어가고, 해 뜨는 아침이 되면 그래도 또 살아지는 반복적인 날들을 얼마나 겪었는지.
아침이 되어서도 ‘아. 오늘은 꼭 가보자’하고 생각한 것이 처음이었다. 이것이 내가 내게 보내는 진짜 신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를 외면해서는 안되었다. 지금을 놓치면 난 평생 이 지긋지긋한 감정을 덜어내지 못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병원들을 찾았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너무 감상적인 듯하여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꼼꼼히 정성은 들여 보이는 병원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고 배려있는 말투가 전화를 받았다.
그 배려가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가 어쩐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마치 내가 돌보아야 하는 어린이, 혹은 사회적 약자로 낙인 되어 배려받는 기분 들었던 것 같다. 참, 단단하지 못한 마음은 요란도 하다. 경상도에서는 이런 경우 지랄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안녕하십니까.ㅇㅇ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오늘 4시 반 이후로 예약이 가능할까요?"
“음... 처음이신가요?”
“네.”
“그럼... 지금 가능하신 시간이... 6시 가능하세요.”
“더 일찍은 안 되나요?”
“네. 더 일찍은 예약이 모두 되어 있어서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로 예약해 주세요.”
“네. 성함이랑 전화번호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리고 내원하실 때 신분증 필요하세요. 처음 한 번은 지참해주셔야 진료 가능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내가 나임을 정확하게 확인할 증명이 필요한 것이다. 타인의 이름으로 진료받는 것을 막기 위한.
하... 어렵게 당일 예약을 잡았다. 이제 한 고비가 넘어갔다.
그런데 나는 가서... 무슨 말을 하지. 왜 왔다고 하지... 그곳에서 나의 어떤 점을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지금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일까... 어떤 의사를 만날까...
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하...
일단 , 그것부터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