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SICK_2
낯선 건물을 돌고 돌아 3층으로 들어섰다. 낯익은 이름의 문을 발견했고 열었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심지어 데스크에 앉아 있는 간호사조차도 나를 아는 체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간 곳은 이곳이 병원이 맞나 싶을 만큼 조용하고 정갈한 곳이었다. 병원이 아니라 명상 수련원 같은 곳에 잘못 와있는 게 아닐까... 작은 대기실 끝에서 끝으로 서 너 명의 남녀가 창밖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자신의 핸드폰을 보면서 각자의 세계 안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내가 데스크로 다가갔을 때야 간호사가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예약하신 ㅇㅇㅇ님이시죠?”
"네"
“이것 좀 적어 주시겠어요? 그리고 신분증 좀 부탁드릴게요.”
“네... 여기. 그런데... 여기 병원... 맞죠?”
간호사는 소리 없이 눈으로 웃었다.
“네 맞아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 맞아요.”
이미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들었던 듯한 뉘앙스로 대답했다. 그제야 데스크 앞에 적힌 팻말을 발견했다.
‘정신과 전문 간호사 ㅇㅇㅇ’
전문 간호사라는 말도 그랬지만 이렇게 간호사의 이름을 명패로 새겨놓은 곳도 보지 못했기에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믿음이 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배려와 친절의 말투는 직접 들었을 때 거부감보다 다정하고 전문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빈자리 한쪽에 앉아 검사지를 썼다.
여러 장에 걸친 질문지에는 현재의 내 마음. 또 지난 두어 달간의 나의 상태를 체크하게 되어있었다. 수 십 개의 질문에는 한결같이 5점이거나 4점이었다. 혹은 질문이 무엇이든 극대이거나 극소의 대답이 체크되었다. 이럴 줄 예상하고 있었지만, 왜 이런 의미 없는 종이를 작성해야 하는 건지 갑자기 모든 게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아... 그만할까.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홈페이지에서 보던 이미지보다는 부드러워 보였다.
병원에 오기 전에 수 십 번 고민했던 것이 있었다. 상담을 잘해주는 선생님을 만나 약 없이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까... 아니면 상담 따위, 의미 없으니 그냥 이러이러한 증상에 맞는 약만 좀 주세요. 바로 효과가 딱! 날 수 있는 거요!라고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다가도 한편으로는.... 낯선 이에게 내 인생을 줄줄이 털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내키지 않기도 했고, 그 효과를 믿을 수 없기도 했다. 또 영양제도 잘 못 먹는 내가 약을 먹는 것이 정말 싫기도 했지만, 약이라도 먹어서 얼른,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기도 했다.
양가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고 그 고민은 선생님을 만나는 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진료 과의 특성상 의사 선생님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나와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던데... 실력은 있을까... 인간애는 있을까... 따듯한 성향일까. 사무적인 성향일까. 경험은 많이 있을까.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안녕하세요”
컴퓨터에서 고개를 거두고 반대편으로 15도쯤 몸을 튼 선생님이 내가 의자에 채 앉기도 전에 질문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음.........
제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너무 괴로워요. “
내 대답에 선생님은 놀라는 눈치였고 굉장히 의외의 말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의연하게 말하고 싶은 알 수 없는 의지가 생겨났다.
“어떤 아이들요?”
“제 아이들요.”
“어떻게 망친다는 말씀이시죠?”
“저의 불안과 불완전함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자꾸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요. 안 그러고 싶은데 그게 안돼요. 고칠 수 있나요? “
“예를 들면 어떻게 망치고 있다는 거죠? 구체적으로요”
선생님의 풀리지 않는 의아함은 질문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 질문에 답을 하느라 나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 행동과 마음에 대해 찬찬히 곱씹어보게 되었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왜 그랬던 걸까. 내가 그래서 그랬던 걸까. 마음과 몸이 왜 다르게 움직였던 걸까...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선생님의 그 질문들이 본능적 의아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계산된 의도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분히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나는 그 질문들로 인해 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파악하는 기회를 가졌고 그것은 굉장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으나 그것이 내가 나를 조금 더 객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객관화시키니 감정적인 우울에서 10cm쯤, 아니 1m쯤은 떨어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