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 SICK_3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오래됐어요. 몇 달? 아니 한 5~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때 왜,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그때가 추석이었거든요. 시댁 식구랑 문제가 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그리고 그 이후의 남편의 태도, 그것에 많이 실망을 한 것 같아요. 내 편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그 슬픔이 꽤 오래갔어요. 남편의 제안으로 그 이후로 나는 시댁에 안 가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남편이 힘들어했어요.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아내 없이 본가에 가서 생길만한 문제들이 있었겠죠. 자신이 시댁에 가지 말라고 말할 땐 미처 몰랐다가 막상 현실에 닥쳐보니 어른들이며 친척들이며 뭐 이러저러한 말들이 있지 않았겠어요. 나중에는 다시 슬며시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던데 제가 못 그러겠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기는 문제들로 서로 좀 힘들었죠.”
“추석 때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은 그때 시댁과의 문제가 뭐였는지 물으셨고 나는 모든 방어를 푼 채 말씀을 드렸다. 듣는 내내 선생님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의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긴 누가 들어도 놀랄 만한 일이긴 했으니까.
“아... 하... 의외의 일이네요. 흔치 않은데... 혹시 여기 이전에 다른 병원에서 진료받아 본 적 있으세요?”
“그 이후로 이렇게 저렇게 몇 년 지내오다가 2~3년 전쯤 구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에 가서 한번 상담을 받았어요. 내가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구요. 그즈음 친정 가족들이 죽었거든요. 오빠와 언니가 며칠 간격으로 연달아... 그때 제가 또 많이 힘들더라구요. 오랫동안 많이 울었어요.”
“하... 힘든 일이 많으셨네요.”
“그때 상담해주신 분도 의사 선생님이신데 우울증이 심각하다고 바로 병원 진료를 받으시길 권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냥 안 갔어요. 못 가겠더라고요.”
“왜요?”
“확인받는 게 싫었어요.”
“뭐가요?”
“내가 환자라는 거요. 정신병원 다니는 환자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면 확인받게 되잖아요. 그걸 못하겠더라구요. 낙인찍히는 거 같아서.”
“그 이후로는 괜찮으셨어요?”
“아니요. 굉장히 무기력해졌어요.”
“예를 들면 어떻게 무기력 해지신 건가요?”
“하루 종일 침대에만 있었어요.”
“얼마나요?”
“그냥 하루 종일이요. 눈을 떠도 침대 위, 눈을 감아도 침대 위, 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미라클 모닝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거 믿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나 좀 궁금하더라구요. 내 무기력을 극복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뭐 거창한 목표는 없었고, 그냥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보기로 했어요. 그것만이 목표였어요. 일어나서 침대를 벗어나서 걷는 것. 새벽에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어요. 처음 며칠은 힘들었지만 곧 일어나는 것은 힘들지 않아 졌어요. 걷기만 했어요. 걷다가 쉬다가. 앉아서 생각 좀 하다가 책도 보고... 두 시간 정도 그렇게 걷기만 했어요."
“어떠셨어요?”
“조금 괜찮아졌어요. 무기력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럼 계속하고 계신 건가요?”
“아뇨, 한 3~4개월 하다가 장마철이 되었어요. 그래서 못 걷게 되었죠.”
선생님은 정확한 시기와 기간을 컴퓨터로 기록하며 질문을 이어가고 계셨다. 난 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의아했지만 일단 묻는 것에 성실히 답하는 환자가 되기로 했다.
“그랬더니 어땠나요?”
“또 무기력해졌죠.”
“그럼 그 이후론 못하고 계신 건가요?”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찾았어요. 뭘 배우기로 했어요. 공예요. 11월부터 공예를 하고 있어요. 아직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1월부터 안 되겠다 싶어서 미라클 모닝을 다시 시작했어요.”
“1월 딱 시작할 때요?”
"네. 1월 1일부터요"
"몇 시에 주무셔서 몇 시에 일어나세요?"
"보통 일어나기는 4시에서 4시 30분 전후로 일어나는데 잠을 일찍 자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해서 자는 건 한 1시나 2시요."
"그럼 총 주무시는 시간이...?"
"네... 한 3시간 정도밖에 안돼요."
"흐... 일어나시면 보통 무얼 하세요?"
"명상도하고, 요가도 하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공부할 게 있으면 공부도 하고 그래요. 많은 것을 해요. 그것을 통해 좀 많이 달라졌어요. 삶의 태도 같은 거요. 얻은 것도 많구요. 취직도 했어요. 자세나 태도가 밝아지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오~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제가 두 달 전부터 좀 많이 아팠거든요. 여기저기가요."
"특별히 아프신 데가 있으세요?"
선생님은 나의 병에 관한 이력을 물어보셨고 나는 그간 앓았던 병들과 현재도 가지고 있는 병, 그리고 수술 이력들을 말씀드렸다.
"아이고 고생 많이 하셨네요."
"온몸이 몸살처럼 2~3주 아팠거든요. 걸으면 무릎이 아프고 자전거를 타면 고관절이 아프고 누워있으면 등이 아팠다가 옆으로 누우면 어깨가 아프고 또 팔꿈치가 아파서 주사를 맞기도 하고... 두통에 소화 불량에... 그렇게 계속 아팠는데."
"그 정도였어요?
"그렇게 아프니까 나의 미라클 모닝을 응원하고 자극받아서 자신도 해볼까 하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더라구요. 그걸 해서 아픈 거라며."
"에구..."
"그렇게 쭉 진행된 거 같아요. 지금까지. 여전히 몸은 아프구요. 마음도 그런 것 같고."
잠시 동안 침묵을 흘렀고, 선생님은 컴퓨터에 무언가를 빠르게 작성하셨다. 그리고 생각을 하는듯하더니 이내 말을 꺼내셨다.
“음... 약을 좀 드시죠.”
“약이요?... 먹어야겠죠? 먹어야죠 뭐......”
“네. 좀 드시죠. 약이 어떤 거냐면... 기분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럼 제 병명이 뭔데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겠지만 현재로는 ‘기분장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기분장애..."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의욕적으로 사시다가 또 기분이 내려가다가 하는 곡선을 그리고 계시잖아요? 약을 드시면 기분이 아주 좋거나, 기분이 아주 나쁜 상태를 중간으로 맞춰 주는 거예요.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도 너무 흥분하지 않도록 중간으로 내려주는데 이게 왜 중요하냐면, 예를 들어 기분 장애를 겪을 때, 기분 좋은 상태가 1 달이다 그러면 곧 나쁜 상태가 찾아오는데 그게 3~4달씩 가고 또 그 나쁜 상태가 굉장히 깊어져요. 그래서 더 힘들어지거든요. 약이 기분을 평균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우울의 원인은 여러 가지에서 올 수 있거든요? 꼭 우울증이어야만 우울이 오는 건 아니고, 강박에서도 올 수 있고, 조울에서도 올 수 있고 또 다른 이유로 올 수도 있어요. 이 약은 일종의 감초 같은 약이에요. 여러 가지에 쓸 수 있는 약이죠."
"맞아요. 제가 강박도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요. 그러실 수 있어요. 강박적 성향이 있으신 분이 뜻 하는 대로 잘 안되었을 경우 아주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선생님의 설명은 친절했다. 내가 느끼는 내 상태도 약 없이는 안 될 것 같았기에 먹겠다고는 했지만 대부분의 초진 환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부작용은 없는지, 먹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바보처럼 멍-해지는 건 아닌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꼼꼼히 물었다. 선생님은 일단 최소의 용량으로 시작하는 거고, 약이 몸에 잘 맞는지 아닌지, 용량도 맞는지 아닌지 당분간 자주 체크하면서 맞춰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선, 약을 먹어보고 몸에 맞지 않거나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병원을 바꿔야지 하고 속으로 조용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뇌의 두 가지 영역 이상을 동시에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었나 보다.
한쪽으로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반응을 하고 대답을 하고 또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한쪽으론 빠져나갈 궁리와 다짐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가... 이런 내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