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봄부터 가을까지 내가 한 일은
그동안 쓴 시들을 고치고 주무르다가
망가뜨린 일이다
시는 고칠수록 시로부터 도망쳤다
등 푸른 물고기떼 배 뒤집고 죽어 가듯이
생명이 빠져나갔다
꽁지 빠진 새처럼 앙상한 가지에 앉아
허공을 보고 나는 조금 울었다
벌목꾼처럼 제법 나이테 굵은 침엽수 활엽수
다듬고 쪼개다가 불쏘시개를 만들고 만 것이다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헛것과 헛짓에 목매단 것이다
나는 울다가 눈을 떴다
그래 이대로 절뚝이며 살아라
나 또한 헛짓하며 즐거웠다
나는 시들을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부서진 욕망, 미완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
불온한 생명이여
어쩌다 내가 기념비적인 기둥 하나를 세웠다 해도
얼마 후면 그 기둥 아래
동네 개가 오줌이나 싸놓고 지나갈 것을*
54년을 쓴 시인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고치고 주무르다 망해버린 글자들
퇴색되고 변해버린 빛을 잃은 언어들
더하고 더하다 아니 더한 만 못해지는 문장들
때론 각고의 노력으로 깎아낸 방망이보다
뚝 분질러 툭툭 털어내고 쥐는 몽둥이가 손에 더 잘 맞는 것을
양념을 가할수록 맛도 잃고 정체성도 잃는 음식처럼
말에는 말 맛이 있고 글에는 글 맛이 있다.
시인의 고백이 오늘의 나를 살게 한다.
물론 54년을 쓴 시인의 시와 내 시의 깊이가 같을 리 만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