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키아프 이후, 침체와 재편의 교차점에서
2025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마친 지금, 한국 미술 시장은 과열기를 지나 건강한 조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2022년 Frieze Seoul의 출범과 함께 글로벌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흥 시장으로 급부상했지만, 이후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 특히 2024년 계엄령 선포와 원화 약세라는 충격을 맞으며 급격한 위축 국면에 들어섰다.
2022년 약 8,000억 원에 달했던 시장 규모는 2025년 약 5,000억 원 수준으로 줄었고, 전국 등록 갤러리 약 100곳이 문을 닫으며 현재는 약 560여 곳이 남아 있다.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해외 의존보다는 국내 작가 발굴과 내실 강화에 무게를 두는 구조적 전환이 시작된 셈이다.
컬렉터 층의 변화도 눈에 띈다. NFT와 단기 차익을 노리고 들어왔던 젊은 IT 기반 투자자들은 사라지고, 다시금 연령대가 높고 안목 중심의 컬렉터들이 시장의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가격 상승보다는 작가의 지속성, 작품의 철학적 깊이, 미학적 완성도를 중시하며 장기적 시선으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투기에서 수집으로의 이동이 뚜렷해졌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약 120개의 갤러리가 참가했으며, 신규로 참여한 곳은 20여 곳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비해 40곳 이상의 주요 갤러리가 불참하면서 시장의 신중한 태도가 드러났다. 국내 주요 갤러리들은 컬렉터들의 적극적인 가격 협상에 직면했고, 일부 해외 갤러리는 철수하거나 규모를 줄였다. 고가 작품 판매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 갤러리들은 이번 시기를 “투기보다 수집에 적합한 시기”, “재정비의 기회”로 평가했다.
경매 시장 역시 변화를 겪고 있다. Phillips는 서울 경매를 취소하고 홍콩에 집중했고, Christie’s도 특별 전시를 중단하며 소수 인력만 서울에 파견하는 전략을 택했다. 글로벌 경매사들마저 한국 시장에 신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형적인 화려함도 줄었다. 한때 프리즈·키아프 기간에 쏟아지던 VIP 디너, 브랜드 파티, 고급 사교 행사는 대폭 축소되었다. 이는 단순히 경기 불황 때문이 아니라, 예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묻는 흐름으로도 읽힌다.
그럼에도 한국 미술계는 지금을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버블 이후의 자연스러운 조정기,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기회로 해석한다. 정부도 문화 산업을 차세대 국가 아젠다로 규정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준비 중이다. 시장 이해도, 소비자 성숙도, 제도적 기반 모두 과거보다 단단히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한때는 뜨겁게 흘러넘치던 용암 같았던 미술 시장이 이제 굳어 지반을 다지는 시간에 들어섰다. 앞으로 이 단단해진 지반 위에 어떤 예술 생태계를 세울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장기 전략과 내실을 구축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자 창조적인 순간이다.
“이번 글은 김현민 님의 ‘패션아트뉴스브리핑’에서 발췌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하였습니다.”
출처 @mini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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