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존중받을 수 있지만 수준은 다르다
우리가 작품을 감상할 때 기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미적 기준, 즉 작품의 형식적 완성도와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평가되는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취향이다. 취향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 반응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는 특정 색감에, 또 어떤 이는 기묘한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한다. 그래서 선호의 양상은 자연스럽게 다양하게 펼쳐진다.
문제는 작품의 가치와 취향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누군가가 “이 작품 정말 좋지 않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흔히 “취향이 있으시네요”라고 답하며 넘긴다. 하지만 미술 시장에서 취향이 곧바로 가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보편적 평가 체계와 크게 어긋난 취향은 시장에서 외면받기 쉽다. 단순히 특이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개 맥락을 잃거나 자기 안에만 갇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취향과 수준은 다른 차원이라는 사실이다. 특정 작품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곧 예술적 수준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취향은 개인의 감각을 드러내지만, 수준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형성된다. 두 개념을 혼동하면 단순한 선호가 객관적 가치로 오해되는 문제가 생긴다.
더 난감한 상황은, 누군가가 단순히 “좋아한다”는 애정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단정할 때다. 애정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작품의 사회적·시장적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감각적 반응과 객관적 가치 사이의 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감상자와 컬렉터에게 주어진 과제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누군가가 눈을 반짝이며 작품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제는 단순히 “취향이 있으시네요”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작품의 맥락, 미적 기준, 취향과 수준의 구분, 그리고 개인적 감각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예술을 사랑한다는 말이 공허한 감탄을 넘어서 서로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이해관계로 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취향 #수준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