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 빛을 잃은 플랫폼]

무너진 ‘글의 시대’가 남긴 상실에 대하여

by 김도형
브런치.png

브런치는 한때 글을 쓰는 이들에게 등대와 같은 존재였다. 작가가 등단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었고, 나 역시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세상에 필요한 글을 썼다는 자부심으로 큰 보람을 느꼈다. 그 글이 누군가에게 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고, 그 플랫폼의 이름이 내 글을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브런치에서 좋은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 이상 브런치를 통해 출판되는 글도,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이름도, 이전처럼 세상에 의미를 던지는 매개가 되지 못한다.


물론 모든 브런치 글을 읽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말하듯, 지금의 브런치에는 더 이상 성찰이나 시선을 돌리게 하는 글이 없다. 연재 기능을 도입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붙여보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글이라는 본질보다 플랫폼의 운영과 서비스적 측면에 치중된 결과처럼 보인다. 그렇게 감정에만 의존하고 감성에만 호소하는 에세이들로 채워진 지금의 브런치는, 결국 자기 위로로 소비되는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가 가진 원래의 가치, 글이라는 행위를 통한 전파와 전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글은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추고, 감춰진 의미를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하며,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는 힘이다. 그것은 꼭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의 브런치는 오히려 그런 방식의 글을 밀어내고, 블로그식 정보 나열이나 깊이 없는 자기 생각의 반복, 혹은 그저 서로를 위로하는 감정의 공회전으로만 채워지고 있다.


나는 브런치를 단순한 아카이브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글을 사랑했던 이들이 모여 만든 공간이었고, 새로운 작가가 세상과 만나는 문이었으며, 세상이 왜 글을 읽는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앞으로 이어질 연재나 응원의 시도 역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브런치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기능이나 명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글을 읽고 사랑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그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브런치 스스로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졸리면 자면 되는 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