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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젊은 세대는 자본주의를 믿지 않게 되었는가]

‘공산화’라기보다 ‘소외’라는 더 정확한 진단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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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주에서 맘다니 시장이 당선되며, 피터 틸(Peter Thiel)이 5년 전 페이스북 경영진에게 보냈던 한 통의 이메일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는 그 안에서 이렇게 묻는다. “왜 젊은 세대는 점점 사회주의나 좌파적 가치에 더 끌리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단순히 ‘세뇌’나 ‘무지’의 결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이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게 된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틀린 건 세대가 아니라, 시작점이다. 과거 세대는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를 얻으며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반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막대한 학자금 빚을 지고 사회에 진입하며, 처음부터 마이너스에서 출발한다. 그들에게 지금의 자본주의는 불공정한 게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집’이라는 상징은 그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전 세대에게 주택은 계층 이동의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계층 고착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공급은 부족하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규제는 복잡하다.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사자마자 자산이 불어난 반면, 오늘의 젊은 세대는 집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기회는 차단됐고, 꿈은 저당 잡혔다.


이처럼 기회를 상실한 젊은 세대는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화’된다. 자산도 없고, 성장의 사다리도 없다. 사회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지분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이 시스템이 자신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틸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들이 공산주의자가 된다 해도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지금의 시스템에서 어떤 이익도 받지 못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분노가 곧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틸은 여기에도 회의적이다. 20세기 초 공산주의나 파시즘처럼 급진적인 운동은 젊은 인구가 많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인해 사회는 점점 더 ‘노인 지배 체제(gerontocracy)’가 되어가고 있다. 목소리를 낼 인구 기반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변화를 주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흐름을 단순히 이념적 급진화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틸이 강조하는 바는 명확하다. “젊은 세대가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기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불공정하게 작동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보이고, 특정 세대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믿게 되는 순간, 그들이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피터 틸은 이렇게 말한다. “젊은 세대는 지금의 시스템에서 아무 이익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이 시스템을 지지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진단을 넘어, 오늘의 자본주의가 다시금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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