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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포인트는 우연이 아니다]

계기처럼 보이는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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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변화의 순간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 부른다. 작고 사소한 계기 하나가 모든 걸 뒤바꾸는 임계점. 하지만 이 책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은 말한다. 그 변화는 사실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것이다. 계기처럼 보이도록 구조화된 결과일 뿐이다.


책의 시작은 단순하다. 왜 어떤 변화는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어떤 시도는 조용히 사라지는가. 기존의 티핑포인트 담론이 개인이나 집단의 감정, 열정, 우연한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그 감정과 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즉 설계자들의 존재를 조명한다. 이들은 어떤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수치와 조건, 반복과 흐름, 서사의 누적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다.


티핑포인트는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전 작업이 시작된다. 브랜드, 문화, 제도, 미디어, 심지어 감정과 공감의 방향까지도 선형적으로 배치된 선택지 위에서 정리된다. 그 선택지들은 점차 대중에게 익숙해지고, 감각을 물들인다. 어느 순간 한계치를 넘어설 때, 우리는 마치 자연발화처럼 그 계기를 받아들이고 만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개념은 ‘오버스토리’다. 단순히 콘텐츠를 많이 소비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버스토리는 흐름 자체를 조작하는 장치다. 감정적 공감, 제도적 언어, 법적 방향, 사회적 관점이 동시에 정렬될 때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그건 당연하지”라고 말하게 된다. 그 순간 변화는 이미 ‘티핑’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특히 숫자에 대해 주목한다. 예전에는 의미가 숫자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는 숫자가 의미를 만든다. 팔로워 수, 조회수, 검색량, 인용 빈도 같은 지표가 곧 신뢰가 되고, 콘텐츠의 가치가 되며, 나아가 ‘사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숫자만으로 세상이 움직이는 시대에서 티핑포인트는 더 이상 감정의 고조가 아닌 지표의 설정에서 기인한다.


이 과정에서 '모노컬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대중이 특정 코드에 수렴할 때, 문화는 다변화가 아닌 단일화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공감하고, 반응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세’가 된다. 책은 이러한 문화적 집중이 어떻게 의도된 알고리즘과 서사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짚는다.


이 책의 미덕은 복잡한 현상들을 하나의 구조적 시나리오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변화가 발생하는 원리를 ‘본능’, ‘수치’, ‘지속 노출’, ‘정렬된 언어’ 같은 구체적인 장치로 설명한다. 특히 ‘전환의 조건은 감동이 아니라 수치’라는 문장은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다. 어떤 흐름이 감동적이냐보다, 그것이 얼마나 많이, 자주,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느냐가 티핑포인트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책은 ‘설계자들’의 존재와 역할을 강조하지만, 이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실질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예시는 많지만, 사례가 파편적이고, 종종 개연성 없이 이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만 동원된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티핑포인트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대답보다는 개념 정리에 머무른 인상이 짙다. 구조의 위력을 강조하는 데 비해, 개인이 그 구조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정말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그 선택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에 의해 ‘선택 가능한 것’으로만 정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선택했다고 믿는 많은 결정들이, 사실은 감정과 숫자와 오버스토리의 설계 안에 있었던 건 아닌가.

이 책은 결국 변화란 무작위적 정서의 고조가 아니라 정교한 구조와 흐름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드는 사람들, 흐름을 조율하는 시스템, 선택지를 배치하는 설계자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표면 너머를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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