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없애는 게 아니라 정답의 갯수를 늘리는 일
우리가 흔히 '다양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정작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거나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접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지 즉, 세상을 바라보는 ‘환경’ 자체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이 일은 결국 하나의 시선만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노컬쳐’를 분산시키는 일이자, ‘폴리컬쳐’라는 다중 기준의 구조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이 전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준을 하나에서 여러 개로 나누는 일이다. 모노컬쳐는 언제나 단일한 기준을 전제로 한다. ‘잘 팔리는 것’, ‘인기 있는 것’, ‘성공한 사례’, ‘정답처럼 보이는 것’. 이러한 하나의 기준만이 유효하다고 여겨질 때,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실패로 규정된다. 반면, 폴리컬쳐는 기준이 다수다. 잘 팔리진 않지만 의미 있는 것, 소수에게만 깊게 다가가는 것, 아직 실패 중이지만 계속 시도 중인 것들. 그런 것들이 함께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기존의 기준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다른 기준을 하나 더 세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노출 경로를 분산시키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더 이상 같은 것을 보지 않는 시대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같은 플랫폼, 같은 알고리즘, 같은 추천 구조 속에서, 거의 동일한 콘텐츠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러니 콘텐츠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도달했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말하고, 다른 경로로 전하고, 다른 문맥 속에 배치하는 것. 그것이 방향성을 분산시키고 기준을 다변화시키는 길이다.
세 번째는 속도를 늦추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빠르다. 빠른 확산, 빠른 결론, 빠른 평가. 이 속도 안에선 다르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모노컬쳐는 항상 속도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다양성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한다. 비교할 수 있는 시간, 망설일 수 있는 구조, 즉각적인 반응이 없는 형식.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속도를 늦추는 것은 곧 티핑 포인트를 지연시키는 일이자, 쉽게 몰아가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네 번째는 실패가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노컬쳐의 알고리즘은 실패를 가차 없이 제거한다. 성과가 없으면 노출되지 않고, 노출되지 않으면 기록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폴리컬쳐는 실패를 ‘흐름’ 안에 둔다. 실패한 시도가 다시 참조되고, 다른 실패와 엮여 다음으로 이어지는 구조. 다양성은 실패를 통해서만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오버스토리를 하나로 만들지 않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는 사회를 모노컬쳐라고 부른다. ‘이게 성공이다’, ‘이게 기준이다’ 같은 하나의 메가서사는 필연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밀어낸다. 폴리컬쳐에서는 다중 서사가 필요하다. 서로 충돌하거나 완전히 다르더라도, 각자의 이야기가 고유하게 존속될 수 있는 상태. 충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충돌 자체가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도록 만드는 것.
결국, 다양성은 정답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정답의 수를 늘리는 일이다.
사람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환경을 설계하는 일이다.
하나의 기준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준을 하나 더 세우는 일이다.
빠른 결론을 지연시키고, 실패를 기록하며, 여러 개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상태.
이 모든 것이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는 진짜 ‘폴리컬쳐’라는 구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