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인색해진 사회]

미안하다는 말이 약함으로 오해되는 순간에 대하여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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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사회생활 속에서 사과라는 행위는 단순한 책임의 표현이 아니라,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했고, 그 말이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과를 하면 관계의 기싸움에서 지는 것 같고, 실제 행동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워진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말조차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진다. 안타깝게도 그 심리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도 많다. 사과가 관계를 회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장면을 너무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과가 불필요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사과가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 책임을 분명히 하는 사과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명확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었고, 그 사람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는 일이다. 사과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정확히 이해했다는 태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는 이 과정 자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을 했음에도 사과하지 않거나, 애초에 잘못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장면도 흔하다.


이런 분위기는 관계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누가 더 문제적인 행동을 했는지를 떠나 성인으로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다루면서도 감정 조절이나 책임 있는 언어 사용이 부족한 모습들이 반복되고, 방송은 오히려 어른도 그럴 수 있다는 식의 면죄부를 건네는 듯 보인다. 그 장면들을 보며, 우리는 과연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라는 존재가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태도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회가 건강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성인으로서의 질책과 책임 있는 비판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질책과 비판이 성숙하게 작동하지 못해왔다는 점이다. 사과를 약함으로 오해하는 문화,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속에서 관계는 점점 더 경직된다. 사과는 패배 선언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다. 그 사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어른다운 사회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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