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과 환경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속도에 대하여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치타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다. 그런데 두번째로 빠른 동물이 아메리카 가지뿔영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잠시 멈칫하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이유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지만, 치타에게서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어처구니없는 이유처럼 들리면서도 이상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상에는 이렇게 말이 되지 않는 설명이 오히려 법칙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면 우연 같고 농담 같지만,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 분명한 맥락이 숨어 있다. 나에게 가장 빠른 동물과 두번째 빠른 동물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종류의 문장이었다.
가장 빠른 동물은 태생적으로 빠르다. 그것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다. 반면 두번째로 빠른 동물은 스스로 원해서 빨라진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속도의 이유가 전혀 다르다.
삶도 비슷하다. 태어나자마자 이미 빠른 트랙 위에 놓인 사람도 있고, 외부 환경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순간들, 도망치듯 달려야 했던 시간들, 그 과정에서 생긴 능력과 감각들이 있다. 그때마다 상황을 원망하고 후회하기보다, 그래도 두번째로 빠른 동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나에게 꽤 익숙하다.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가장 빠른 동물에게는 이상하게 이입도 공감도 잘 되지 않는다. 대신 가지뿔영양 쪽에 먼저 마음이 간다. 빠름의 이유가 능력이 아니라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처지와 조건, 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속도라는 점이 이상할 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가장 빠른 동물과 두번째 빠른 동물의 이야기는 넌센스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삶을 바라보는 꽤 정직한 비유가 숨어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이유로 달리고 있다. 태생적으로 빠른 사람도 있고, 도망치다 보니 빨라진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의 순위가 아니라, 그 속도가 만들어진 맥락을 스스로 알고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