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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멘적인 것: 피조물의 감정]

by 김도형 Feb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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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1번 클래식’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듣는다. 그중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2악장을 해석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해설자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를 하나의 대화로 묘사하며, 오케스트라는 대자연, 피아노는 나약한 인간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음악이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장엄하고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이 곡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마치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성스러움에 대한 경외감을 ‘누멘적인 것(Numinous, das Numinos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앞에서 느끼는 감정을 ‘누멘적 감각(sensus numinis)’ 또는 ‘피조물적 감정(creature feeling)’이라고 한다. 이는 두렵고도 위대한 것 앞에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을 의미한다.


나는 예술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광활하고 장엄한 우주 속에서 스스로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자각하는 순간, 인간은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거대한 질서 속에서 운명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예술은 우리가 피조물로서 느끼는 절대적인 격차와 위대함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예술가는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며, 그 작품은 또 다른 ‘피조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작품 속에서 다시금 축소된 성스러움을 경험하며, 인간의 감정과 본질을 투영한다. 내게 있어 삶에서 경험한 가장 숭고한 순간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였다. 그의 작품은 마치 감정을 후벼 파듯 깊숙이 스며들었고, 압도적인 색채 속에서 나의 나약함을 마주하게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순간의 무력감은 오히려 희열과도 같았다.


어쩌면 나는 누멘적 감각이 주는 경외감을 희열로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착각조차도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경이로운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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