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목적에 맞는 순수함]

by 김도형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냐”며 순수하게 사는 나를 걱정하는 말을 듣곤 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주는 쪽이 더 마음 편했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과의 시간 속에서도 특별함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사람에 대한 호의와 함께 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내가 가진 순수함과 긍정적인 나눔의 마음이 어떤 이에게는 순진함으로 비춰지고, 때로는 이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예전에는 좋은 마음으로 더 감내하기도 했고, 상처를 속으로 삼키며 넘긴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 내 등에 칼을 꽂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단단함이 있어야 진짜 순수함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순수함은 무조건 열어두는 감정이 아니다. 의도와 목적에 맞는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연기처럼 인위적인 순수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마음에도 완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순수함이 진짜 빛을 발할 수 있는 때를 알아보고, 그때를 위해 아껴 써야 한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버거울 때면, 세상 누구도 나를 고려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시 사람을 마주하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으려면,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에너지와 회복력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순수함은 의도와 목적에 맞게 다뤄져야 한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다. 오래 가는 일이다. 끝까지 사람과 연결되어 있기 위해서라도, 순수함은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간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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