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집중력 장애, 혹은 산만함으로 불린 ADHD는 이전에는 큰 질병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감기처럼 흔하고 가벼운 증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만큼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의 이해가 깊어지고, 병명에 담긴 어감도 희석된 점이 흥미롭다.
공황장애도 비슷하다. 정말 힘든 상황을 견디며 병을 앓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병명을 쓰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병명이란 결국 이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증상을 검색해 스스로 판단하고, 심지어 진단까지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질환조차도 자기가 만든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이름 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ADHD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유전적 한계라기보다, 멀티태스킹과 과잉 과업을 요구하는 사회가 만든 결과처럼 느껴진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데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결국 아무것도 놓칠 수 없는 상태에서 헤매는 모습이 바로 성인 ADHD 아닐까.
‘집중력 장애’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방향을 잃고 갈피를 못 잡는 안타까운 상태에 가깝다. 사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며 발달해 왔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 비해 우리가 하루에 접하는 정보의 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정보량을 늘려 왔고, 그 결과 지적 호기심은 끝없이 갈증을 느끼며 무언가를 더 채우려 한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질병이 아니라 방향과 절제다. 절제하지 못하고 끝없이 분산되는 상태가 문제인 것이다. 이럴 때는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억지로 선택하기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멈춰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하는 것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물음이다.
ADHD라는 이름에 자신을 가두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뇌의 신호일 수도 있다. 스스로를 진단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