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과 구가 결합되는 변화의 법칙]

증식의 차이 Multiplying Difference

by 김도형
증식의 차이.png



우리는 오랫동안 ‘변화’란 기존의 것을 타파하고 전복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믿어왔다. 특히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에서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해체하고 조합하는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 균열을 내는 개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증식의 차이(Multiplying Difference)’이다. 이 개념은 컴퓨터 기반의 전자 시뮬레이션에서 비롯된 것으로, 단순히 규격화된 틀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를 유연하게 증식시키고 심화시킴으로써 끝없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변화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 포토샵의 작동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 형태를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의 레이어를 중첩하고 조절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즉, 변화는 해체와 재조합의 결과가 아니라, 겹의 더함과 중첩을 통해 이루어진다. 기존의 것을 덮거나 혼합하거나, 때로는 투명하게 비추어내면서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신(新)과 구(舊)의 만남 역시 이와 유사하다. ‘신’은 ‘구’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덧입혀지거나, 반투명하게 겹쳐진 채 공존한다. 그리고 이 겹침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전혀 다른 풍경을 형성한다.


나는 ‘변화’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것이 곧 무언가를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이라 믿었다. 새로운 것을 향한 갈망은 항상 기존의 것을 밀어내야 한다는 전제와 함께였고, 그것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했다. 하지만 증식의 차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진정한 변화는 부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덧대고, 쌓이고, 중첩되어서 가능해진다. 그것은 점진적이며 유동적인 과정이다. 단 한 번의 파열음처럼 거창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물방울이 바위를 두드려 형태를 바꾸듯, 세상은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변해간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구조를 순식간에 바꾸는 혁명보다도, 서서히 확산되고 중첩되며 어느새 전혀 다른 양상을 만들어내는 변화의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겉으로는 작고 가벼운 듯 보이지만, 그런 변화들이 겹쳐지며 결국은 기존 질서를 비틀고 확장시키는 법이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급진적 전환을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무겁지 않되 진실한 시도들이 만들어내는 증식의 물결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구의결합 #변화의법칙 #증식의차이 #포토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DHD, 지적 호기심의 무한 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