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너는 그래도 좋겠다. 좋아하는 일 하잖아."

영화를 직접 만든다는 건 전혀 '영화 같은 일'이 아닌 것을

by 아티


처음 영화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이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하나 있다.


"너는 그래도 좋겠다. 좋아하는 일 하잖아."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 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내게는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영화를 제작하면서 힘든 부분이나 내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들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공을 선택한 것도 맞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창작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 까지도 영화를 찍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만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영화 제작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 그때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붐대 대신 대나무에 마이크를 달아 녹음을 하기도 했고, 카메라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뜸 dslr 카메라 먼저 사들였다. 그렇게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시작한 영화 촬영은 내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은 듯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진로(대학 전공)를 정한 나는 1년간의 입시를 통해 겨우 한 수도권 대학의 영화전공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처음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학교 생활은 무난했다. 보통의 대학 새내기들처럼 사람들이랑 술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선배와 동기들과 함께 축제도 즐겼다. 다른 과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영화를 제작하고, 선배들의 작품을 도와주는 것 정도였다. 1학년 같은 경우는 작게 한 달 단위의 프로젝트라고 하면 3-4학년 선배들 같은 경우는 1년 정도의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선배들의 작품에 각 부서의 막내로 들어가 일을 배우거나 도왔다.


우리 학교는 영화 전공 내에서도 또 각 부서별로 전공을 나누었다. 예를 들면 감독(연출), 제작(PD), 촬영, 조명, 음향, 미술, 편집 등 이런 식으로 세부적으로 자신만의 전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업을 별개로 듣거나 하지는 않았고 개인적으로 공부를 따로 더 하거나 동아리나 스터디에 들거나 하는 정도였다. 연출 전공이라고 해서 다른 촬영이나 음향 파트를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중에서 나는 1학년 때부터 연출 전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출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내가 '봉준호 감독처럼 되고 싶다!'라는 것도 아니었고, 감독을 하고 싶은 열망이 커서도 아니었다. 단순히 촬영, 조명처럼 기계를 다루는 건 자신이 없었고 미술도 내가 무언가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거나 옷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연출을 하면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에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출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감과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렇게 입학 후 학교에서 만든 첫 영화는 짧은 5분짜리 로맨스 영화였다. 시놉시스는 대략 '대학생인 주인공이 한 선배를 몰래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주인공의 친구를 좋아했다.'라는 내용이었다. 몰래 짝사랑하는 감정을 영화 안에 담고 싶어서 딱딱 거리는 '펜'의 소리를 통해 떨리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제작 과정도 영화 내용도 풋풋했기 때문에 딱 고등학교 때 영화를 만들었던 기분과 비슷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는 편집을 할 줄 몰라 완성을 못 시켰는데 처음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고 나니 굉장히 뿌듯했다.


첫 연출작 단편영화 스틸컷


처음 이렇게 영화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영화를 전공하기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환상은 딱 1년이 되자마자 무너지게 되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졌고, 체력적으로도 벅찰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길을 계속 가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사실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겪은 좌절감, 자존감 하락, 우울증은 단순히 '나는 이 일을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견뎌!'라고 위로하며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과거는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고 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누군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영화를 찍던 대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에 '영화 같다.'라는 문장은 무언가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어감이 든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찍어보면서 영화는 전혀 '영화' 같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갖은 수난과 고통을 겪고 안타고니스트(적)를 만나 방해를 받는 '주인공'과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성장을 하고 영화가 끝나는 것처럼 나 역시, 휴학을 포함해 대학을 다니는 6년 동안 영화를 찍으며 상처받고, 영화를 찍으며 회복했다.


어느덧 나는 20대의 끝자락에 서있다. 인생의 또 다른 챕터로 넘어가기 전, 여리고 상처투성이었던 대학시절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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