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블랙박스를 다시 열고

융합예술 프론티어_출판인 주일우 인터뷰

by 아르떼 시민교육팀

주일우 / 출판인


한국에서 생화학과 과학사를 전공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환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잡지 『이다』의 편집동인이었으며 과학 잡지 『에피』와 인문 예술 잡지 『에프』의 발행인이다. 문지문화원 사이 재직 중 개설한 미디어아트 워크숍은 미디어 아티스트의 상호교류와 새로운 아티스트 배출이 이루어지는 거점이자 활동무대였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지냈고, 현재 이음출판사 대표로 과학과 문화 예술 사이의 역동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있다.




강지웅(이하 '강'): 선생님께서 미디어아트 강좌를 개설하셨을 당시에 어떤 배경과 맥락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김탕(이하 '김'): 그냥 만드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주일우(이하 '주'): 제가 과학과 문화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요. 당시 뉴미디어를 매개로 한 예술이 과학기술과 예술 아니면 문화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강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도 같이 하고 했어요. 강좌를 개설했던 이유는 당시 학교에 자리 잡은 아티스트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아직 자리가 충분히 열리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모일 수 있었고, 배우는 입장에서도 미디어아트가 새로운 조류이긴 한데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 모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이니까 그 사람들 사이에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그걸 바탕으로 일정 기간 동안 과학기술적인 지식하고 예술적인 어떤 관점들이 만나는 장으로써의 역할을 한 거죠.


강: 꼭 통섭이나 융합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진 않으셨겠지만 그때 하신 작업들이 지금 그렇게 불리는 작업들이었을 것 같아요.

주: 양쪽이 만나는 방법에는 무언가를 공동으로 함께 작업하는 방법이 있고, 한 사람이 스스로 여러 가지를 다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다 염두에 두고 해 봤어요.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프로젝트를 해보기도 하고, 각자에게 더 필요한 지식이나 역량을 채워서 스스로 융합적인 일을 하는 것도 해봤어요.


김: 지금 융복합과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을 선생님께서는 십수 년 전에 하신 셈인데 지금의 융복합은 그때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주: '블랙박스가 닫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블랙박스가 열려있었던 거죠. 예전에는 그 안에 연결하는 회로들을 하나하나 참여하는 사람들이 직접 고쳐가며 사용해야 했는데 지금은 블랙박스가 닫히면서 툴로 완성되어 있는 것들을 사용하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방법이 늘어났지만, 블랙박스가 닫히기 전에 직접 신호를 만들고 그 신호로 뭔가를 하는 과정들은 점차 생략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예전과 같은 현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내부에서 어떤 과정들이 이루어지는지는 모르는 거죠. 지금 융복합 씬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공부도 많이 했고, 이론도 늘었고, 담론도 풍부해졌지만 예전의 정신은 흐려진 측면도 있다고 봐요. 도구를 가져다 쓰는 것만으로는 실제 원리나 과학적인 면모에 관한 어웨어니스(awareness)가 따르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장비와 도구가 발전하면서 예술가들이 잘 활용하고 관객들이 이전보다 더 넓어진 표현을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그것이 이전의 융복합에서 바라거나 생각하는 지점과는 다른 지점이죠. 이전으로부터 이어지는 새로움을 열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 짜인 형태라는 느낌이 들죠.


김: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6세기에는 예술가들이 물감을 만들기 위해 계란 노른자에서 (성분을) 추출하고 보석을 부쉈잖아요. 그렇게 뽑아낸 아주 적은 재료에서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면서 만든 작품의 터치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감성을 관객이 느꼈고요. 그런데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감에서는 그걸 느끼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주: 재료는 풍부해지면서 개인화된 자기만의 무언가를 만드는 건 줄어든 셈이죠.


김: 저는 드림아트랩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인 융복합 교육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원리를 탐구하고 재료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일종의 경로를 찾는 작업이 교육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저에게 있나 봐요. 그런 점에서 만들어진 도구를 활용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해석도 필요한 것 같아요.

주: 과학적 원리와 예술적 관점이나 직관을 가지고 계속해서 시행착오(try and error)를 통해 뭔가를 해보는 것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어떤 새로운 영역을 여는데 되게 중요한 역할을 할 텐데 그냥 사서 써보는 것만 해도 새로운 경험이죠. 좋은 게임기가 나와서 그 게임을 한 번 해봤다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지만 그 안을 하나도 들여다볼 수 없는 상태에서 그걸 계속하는 건 그냥 상품을 소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융복합을 생각한다면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이 드러나도록 설계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 관련해서 융복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는 것 같아요.

주: 그 부분은 매개자나 교육자의 문제라 할 수 있어요. 융복합을 통해 예상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기대한다면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데, 벗어나려면 교육자나 매개자가 뭔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하죠. 그런데 그러려면 매개자도 힘들잖아요. 그러니 매개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연구하고 개발하는 여건을 마련해줘야죠.


강: 융복합을 추구하는 많은 방식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공동작업의 결과가 다양하게 조명되기보다는 아직 혹은 여전히 여러 분야가 모였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아요.

주: 그때에도 적극적인 매개자가 필요해요. 사람들이 알아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결과가 자라나기는 어렵고 그 사이에 또 적극적인 매개자가 필요하거든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문학 작가와 미디어아트 작가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이 자원이 드는 일이거든요. (중간에서) 계속 이야기하게 하고, 적당한지 살피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도 하는 그런 것들을 반복적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에요.


강: 선생님께서 매개자 역할을 하셨던 거죠?

주: 네.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쪽이랑 관계가 있었고, 그다음에 시각 예술하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다음에는 공연 예술하는 친구들과 관계가 생기면서 그 그룹들을 잘 엮을 수 있었고, 제가 하는 과학에서도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이 친구랑 저 친구가 이걸 같이 해보면 좋겠다'정도로 네트워크를 계속 만들기 시작한 거죠.


강: 선생님께서 그런 역할을 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던 건가요?

주: 여러 우연들이 있긴 했죠. 제가 대학원 다닐 때 문학하는 쪽에서 잡지를 같이 만들자고 했던 것도 우연이었고, 제가 아는 친구가 저를 추천한 것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제가 승낙을 한 건 우연이었죠. 그러다 보니 예술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확장된 거죠. 문학하는 친구들과 만났을 때 천장에 불이 깜빡거리면 "이과니까 네가 갈아라", "이과만 등 갈라는 법 있냐"고 아웅다웅했지만, 사실 과학과 관련된 얘기들을 인문학자들하고 나눌 수 있는 영역이 새로 생겼고, 제가 처음 들어간 사람이 된 거죠. 잡지는 문화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고, 그중에서 과학은 새로운 분야여서 창간호 첫 글을 제가 쓰면서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것이 1990년대 중반이었어요.


김: 그러면 선생님 같은 매개자 역할을 표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품과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 저도 표준화에 대해서는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이런 역할은 품과 비용이 많이 들고, 저도 의식적으로 매개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기도 하고요. (돌아보니) 저는 제가 재미난 프로젝트들을 같이 할 친구들을 모아서 계속 같이 했어요. 잡지를 중심에 두고 새로 주제를 잡으면 그걸 위해 필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만남이 파생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아가면서 할 수 있는 영역이나 역량들이 조금씩 더 생겼어요. 그런 식으로 자기가 꾸준히 해나가는 뭔가를 갖는 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강: 현재 융합예술은 예술과 기술의 만남 혹은 나열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융복합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통섭부터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을 텐데 통섭의 맥락에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주: 중요한 건 뭘 하고자 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답을 찾고자 할 때 내가 가진 모든 자원을 활용해서 최선의 답을 찾는 건 되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절한 자원을 두고 굳이 다른 자원을 선택해서 고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융합은 그 자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자원이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자원을 내가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 필요할 때 끌어다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런 것이 융복합과 관련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강: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이 2017년을 전후로 자리 잡으면서 기술에 압도되는 듯한 정서가 생긴 것 같아요. 일종의 생존에 관한 절박함으로 배워야 한다는 그런 느낌 같이요. 그런 시대가 될까요?

주: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건 사실이니까 우리가 그 기계나 사물들하고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해야 되겠죠. 4차 산업혁명 담론에 관해서는 거기에 잘 따라가야 돈을 벌고 좋은 대우를 받고 살 수 있다는 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에 그런 조급함이 생긴다고 봐요. 제가 과학기술과 문화를 매개하면서 강조했던 건 그런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가 자기를 두고서 결정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지면 맞을 거예요 안 맞을 거예요? 맞는다면 언제 몇 번째로 맞을 거예요? 이런 것들을 판단하려면 어느 정도 알아야 하잖아요. 안 그러면 외부의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데 가짜 뉴스 같은 허위 정보에 의해 판단을 잘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인간이 가진 한계 때문에 그런 문제는 늘 발생할 수 있어서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할 사실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어떻게 전염되는지 알면 스스로도 지키고 다른 사람과 주변을 더 잘 지킬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저는 과학기술을 알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오퍼레이터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강: 한편으로는 기술에 대한 강조는 어른들의 불안이 더 많이 반영된 것이고, 정작 아이들은 관심이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주: 자기가 필요한 시점에 하면 훨씬 더 빨리 습득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을 때 하면 좋은 것을 어릴 때 하면 어렵고 싫증 나기도 하잖아요. 전기가 통하도록 키트를 다루는 것보다 키트가 없을 때에도 전기가 통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얘기들을 더 해나가는 쪽으로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강: 물감을 직접 만들어보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주: 훨씬 중요하죠. 물감을 직접 만드는 거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잖아요. 물감을 만든다고 하면 자연에서 무엇을 채취해야 되느냐서부터 뽑아내는 색소에 관한 것까지 생각할 것도 너무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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