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아트랩 4.0 아티스트 인터뷰 - 박선유 (유쾌한)
박선유 / 다원예술가
클래식 작곡과 음악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융합예술공연, 악기와 컴퓨터를 위한 음악, 실험 영상, 인터랙티브 인스톨레이션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며, 2018년부터 ‘나의 낯선 몸’을 주제로 하는 <LOOK> 시리즈를 발표해오고 있다. 다수의 기관과 융복합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출강 중이다.
강지웅(이하 ‘강’): 지난해에서 연결되는 사업에 합류하신 셈이라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업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인상을 받으셨을지 궁금해요.
박선유(이하 ‘박’): 초기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서 수업에서는 기술 부분을 구성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어요. 제가 평소 작업하는 작곡이나 전자 음악이 아닌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해서 굉장히 즐거웠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업에 참여하면서 인간을 그리고 나를 들여다보고 거기서부터 감정을 표현한다는 예술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어요.
강: 발달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면서 특별히 중점을 두고 고려한 사항이 있으셨나요.
박: 스텝 바이 스텝으로 차근차근 진행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내가 자연스럽게 하느라 구분하지 못한 스텝은 없는지 되짚으면서 반복해서 검토했고요. 같이 준비한 선생님들과 서로 교육을 해보면서 학생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하려고 했어요.
강: 기술을 접목하는 차원에서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박: 이번에 저희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이 디지털 세계에 우주로 가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설정이었어요. 그 안에서 차시별로 표현하고자 하는 스토리와 핵심 키워드가 있었는데요.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툴을 쓸 수 있을까라는 접근을 했어요. 복제나 변형과 같은 키워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역으로 고민을 하면서 쉽고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툴이나 프로그램을 찾기도 했어요.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최선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익숙해진 다음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데서 독립된 창작자의 면모가 문득 나타나는 걸 보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강: 기술을 접목한 예술교육이라고 해서 코딩을 직접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에 이미 갖추어진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기술 교육으로 충분하냐는 질문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예술가로서 기술을 공부한 입장에서 기술이 어떤 표현의 도구 중 하나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곡을 쓸 때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 선택하는데 전자음악은 그중 하나거든요. 바이올린이나 플롯까지는 악기고 전자 음악은 기술이라고 구분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거죠. 전자 음악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코딩을 배워야 한다면 바이올린을 사용하려면 직접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물론 코딩을 배우면서 습득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긴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나 여건에 맞춰 교육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 저도 코딩 교육의 여부보다는 기술을 정의하는 시도를 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동안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많이 해오셨는데 이번 프로그램에서 어떤 부분이 특별히 인상적이셨나요.
박: 학생들의 뜨거웠던 반응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수업을 진행할 때 주제에 대한 아날로그 활동을 먼저 하고 다음으로 디지털 활동을 하는 순서로 구성했어요.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성격의 활동이 주는 느낌을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강: 디지털 활동과 아날로그 활동을 구분해서 세팅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박: 주제에 대해 점진적으로 진입하게 하고 싶었어요. 가령 디지털을 주제로 한다면 먼저 아날로그 활동에서 동그란 점 모양을 판에 붙이면서 도트(dot)의 개념을 이해한 다음에 디지털 활동을 하는 식으로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완전히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강: 전자 음악을 악기 중에 하나로 보신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셨을지도 궁금해요.
박: 작곡과에 재학할 때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중에 컴퓨터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조금씩 배우고 익히기 시작했는데 제가 전공하는 현대 음악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강: 컴퓨터 음악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과 내가 직접 부딪혀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박: 대세가 될까 생각하진 않았고 재미있고 좋아서 했던 것 같아요. 좀 더 깊게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음악과 소리를 다루는 작업을 계속하면서 영상, 조명, 무용수의 움직임 등을 두루 고민하면서 경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날로그, 그러니까 어쿠스틱 악기만 쓰다가 전자 음악을 또 다른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비주얼적인 요소들도 활용해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그렇게 머릿속으로 떠올린 표현을 구현할 수 있는 경로를 확장하면서 매체를 늘리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강: 선생님께서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것들을 장르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잖아요. 장르마다 요구되는 전문성이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일 텐데 선생님께서는 차이보다는 공통되게 통하는 무언가를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 저는 곡을 쓸 때 구조적이고 치밀하게 구성하는 걸 좋아해요. 음악을 포함해 움직임이나 영상 등 작품에 포함되는 구성 요소들을 해체하고 쪼개서 구성하거든요. 어떤 전개 방식이나 동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음악이 아닌 매체에도 음악 어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건 확인했어요. 물론 직접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한다거나 하는 부분은 별개의 문제겠지요.
강: 선생님께서는 구성하신 작업을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 네,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아티스트들께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드려요. ‘저는 이런 이유로 이런 구성 요소들을 이만큼 해체해서 하고 싶습니다.’ 설명해 드리면서 이해해 주시는 분들과 작업을 하게 되는 거겠죠.
강: 자연스럽게 협업에 대한 노하우도 많이 쌓으셨을 것 같아요.
박: 일단 맛있는 걸 사드리고요(웃음). 함께 작업하시는 분들이 제가 생각한 것을 같이 그릴 수 있도록 기획안부터 필요한 자료들을 보여드려요. 주제, 접근 방법, 표현 등 구성요소를 짚으면서 공연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 그림을 잡고요. 그런 공감하는 단계가 잘 진행될수록 수월하게 잘 진행이 됐던 것 같아요.
강: 선생님께서 하시는 작업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방향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낯선 시도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함께 할 때 더 시너지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박: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원래 베이스가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제가 먼저 구성한 작업이라도 협업하는 과정에서 이런 건 어떠냐며 다른 분이 제안해주시는 게 제가 의도했던 걸 표현하는데 더 잘 맞을 때도 많거든요. 그분이 더 전문가시니까요. 그런 의견들을 받아들이면서 저도 또 새롭게 배우는 그런 과정들이 계속 일어나는 거죠.
강: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 ‘융합’이라는 표현 때문에 실제로 일어나는 과정을 오히려 다양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박: 거창한 결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압박이 주는 애로 사항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더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조건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해요.
강: 그런 어려움을 선생님은 어떻게 돌파하고 계세요.
박: 제가 시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작곡 어법을 다른 장르에 써보는 거예요. 제가 모든 장르와 융합을 시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건 아니지만 저는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음악은 청각을 쓰는 예술인데 이걸 시각 예술에 적용하면 다르다는 걸 경험하게 됐어요. 현대 음악은 굉장히 치밀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로 들을 때는 충분히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럼 이 구조를 시각으로 보여주면 어떻게 느낄까에 대한 것이 제 연구과제였거든요. 거기서 출발해서 음악 작업을 미술, 영상, 무용 같은 다른 분야에 적용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하는 작업이 차별성을 가지면서 제 작품 안에서는 통일성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강: 다양한 방법을 찾으시는 과정에서 어쨌든 기능적으로 익히는 단계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박: 그냥 맨땅에 헤딩하면서 공부를 하는 방법밖에 없죠.
강: 역시 구글링.
박: 구글링과 유튜브가 저를 가르쳤다고 할 수 있죠(웃음). 지금은 프로그램이나 기술 교육을 하는 분들이 많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방법이 그거밖에 없기도 했어요.
강: 그렇게 공부하시면서 실패나 습득하는 즐거움을 발견하셨을 것 같아요. 드림아트랩은 지식 자체보다 그 실패나 습득의 감각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박: 기술을 익힘으로써 표현의 방식이 다양해지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걸로 표현할지 안 할지는 학생 혹은 창작자의 몫이겠지만, 저는 기술을 알면 작업을 위한 발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작업을 하는 순서가 늘 아이디어를 떠올린 다음 그걸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기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생각했던 주제랑 표현 방법들이 같이 떠오를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양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기술을 먼저 알고 있으면 지금 표현하고 싶은 게 없더라도 나중에 표현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 기술이 아이디어를 자극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창작자 여부와 관계없이 이런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 그러게요, 이게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아야 어떻게 작동시킬지 떠올릴 수 있는 거잖아요.
박: 기술 자체가 굉장히 예술적일 때도 많아요. 기술이 보여지는 이미지 자체가 예술적일 때도 있고, 기술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예술적일 때도 있어서 그 자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많아요. 힌트를 얻는다고 해야 할까요.
강: 선생님 말씀에 강하게 무게를 두면 어떤 점에서는 내가 어떤 기술을 몰라서 표현할 수 없을 수 있겠다는 부담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약간은 숙명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뭔가 공부 더 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항상 있죠. 1년에 하나씩 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만 될 것 같고, 요즘에 뭐가 핫하지, 메타버스 세상을 설계해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하죠.
강: 그럼 좀 피곤하지 않으세요.
박: 할 수 있는 건 하고, 안 하는 거 안 하는 편인데요. 글쎄요, 작업이 들어가면 확실히 조금 더 뭔가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아요.
강: 선생님 말씀에서 기술의 정도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드림아트랩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로 전달하는 게 좋을까 하는 건데요. 기술이 반영된 사용성 높은 제품을 활용해서 예술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적당할지 아니면 기술 자체를 다루면서 예술적인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도면 좋을지 궁금해지네요.
박: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기술인지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많은 예술가가 서로 다른 기술을 써서 서로 다른 표현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강: 그러면 예술에서 바라보는 기술부터 정리하는 것이 더 필요할까요? 지금은 갑자기 예술이 기술을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에 놓인 것 같은 분위기인 것 같아요.
박: 저는 예술을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해요. 크레파스, 물감, 태블릿 이런 느낌이요. 제가 오선지에 곡을 쓸 때보다 지금 하는 작업이 물리적으로 노동의 강도는 훨씬 강하지만 표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너무나 커지기 때문에 그런 데서 오는 자유로움도 있어요.
강: 작업의 보람에도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박: 어느 작업이든 퀄리티가 잘 나오면 가장 보람이 있죠. 기술을 썼기 때문에 더 보람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고요. 컴퓨터를 악기로 써서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를 특별히 기술을 활용했다고 특별히 구분해서 인식하지 않기도 하고요.
강: 청소년들에게도 그런 태도가 좀 보이세요?
박: 저는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기술과 자기 삶의 경계가 정말 없어요. 어른들은 기술을 대할 때 약간 각을 잡잖아요. 각 잡고 이제 기술 공부해보자 약간 이런 느낌인데 이 친구들은 카메라로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재미를 느끼면 뭔가 만들어서 틱톡에 올리더라고요. 그렇게 자기 삶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걸 보면서 기술을 특별히 구분하는 것은 어른들의 기준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강: 예술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런 차이를 많이 보실 것 같아요.
박: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관람자로서 있는 어린 친구들을 봐도 어른들은 무슨 기술을 썼는지 확인하려는 반면에 아이들은 그냥 작품을 보더라고요. 제 작업 중에 증강현실을 이용해서 무용수가 무대에도 있고 증강현실에도 있는 신이 있는데 그 신에 대한 반응에서 그런 차이를 느꼈어요. 아이들한테는 증강현실이 낯설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과 저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이네 하면서 주제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강: 말씀해 주신 내용이 세대가 변하고 있다는 뜻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의미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예술이 내 걸 하는 거긴 하지만 내 예술을 감상하는 자들이 계속 바뀌고 있고 내가 잘 모르는 자들이 내 예술을 보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랄까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이 사람들한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을 잘 모르는데, 이런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죠. 근본적으로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긴 해요.
강: 기술을 특별히 구분하는 관객과 구분하지 않은 관객 사이에서 창작자로서 어느 방향을 추구할지 고민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과감한 기술적 시도를 할지, 아니면 기술에 대한 더 너른 이해를 구하는 접근을 할지는 서로 다른 방향일 텐데 그런 고민을 하진 않으시나요?
박: 작업에서 기술을 끌고 들어올 때 제일 경계하는 거는 “그냥 이 기술을 썼어”라는 말은 안 듣는 거예요. 이 표현을 하려면 이 기술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도 납득하고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안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강: 말씀하신 그 지점이 예술가 사이에서는 작업의 예술성에 대한 공감대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공감대 안에서는 얼마나 새로운 기술을 썼느냐가 중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창작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창작의 경향이 달라졌다고 봐야 할까요.
박: 상상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요즘 홀로그램이나 증강현실 같은 기술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옛날 작품에도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상을 표현하긴 했거든요. 그 부분이 늘 어려운 것 같아요. 이게 맞는지, 불필요하게 보이지 않는지 스스로 계속 검열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기술을 쓸 수 있는데 안 쓸 필요도 없잖아요. 내가 상상하는 걸 증강현실로 표현할 수 있다면 증강현실을 사용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하는 맥락을 찾는 지점이 중요하면서 어려운 것 같아요.
강: 올해 드림아트랩에 참여한 친구들에게 무엇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하시나요?
박: 생각한 걸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 마지막 즈음에 아이들이 “선생님 이거 어때요”하고 자기가 만든 걸 많이 보여줬거든요. 스스로 뭔가 창작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상태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원했던 지점을 본 것 같아요.
강: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드는 것의 즐거움은 충분히 느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단순히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가령 만들어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물감의 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진 않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잘 만들어진 제품이 많은 시대에 원리만 강조하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 0부터 시작해서 뭔가를 만드는 것도 재밌지만 0부터 10까지는 만들어주고 10에서부터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이 0부터 하라고 하면 힘들 수 있잖아요. 오히려 이거는 우리 영역이고 너는 그냥 감상만 해 하고 벽을 만드는 느낌일 수 있고요. 반면에 10부터 시작하더라도 더 하고 싶은 친구들은 가지 말라고 해도 0으로 가잖아요. 그래서 그냥 2부터 하든 10부터 하든 다양한 것들이 제공되면서 계속 좋은 자극을 주는 게 어린이든 어른에게든 다 필요한 것 같아요.
강: 창작의 방법이나 경로가 다양해지는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연결되게 될까요?
박: 지금 100이면 100명의 예술가가 서로 다른 걸 하는 시대고 서로 다른 걸 하고 싶어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어떤 작업 주로 하냐는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선생님이랑 비슷한 작가가 누구인지 물으시는데 누구랑 비슷하다는 건 또 내키지 않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겠는데요. 있긴 있겠지만 저는 잘 몰라요 이러는데(웃음), 그런 면에서 창작자든 관객이든 점점 특정한 범주로 분류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주류로 여겨지는 건 있겠지만요.
강: 자연스럽게 아름다움, 예술에 대한 기준이나 정의도 달라질 것 같아요. 그런 변화가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선생님은 왠지 그 변화를 기다리실 것 같기도 해요.
박: 새로운 걸 좋아하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다 따라가 하는 마음도 있어요.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거를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내면 된다고 하면서 스스로 가다듬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