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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떼 시민교육팀 Jan 03. 2022

스스로 깨우칠
공간과 시간을 열어두면

드림아트랩 4.0 아티스트 인터뷰 - 임도원 (토탈미술관)

임도원 미디어 아티스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베이징에 위치한 Can Foundaion 레지던시에 선정되어 참여하였다. 3D 프린터 개발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저서로 '라이노 예제로 배우는 크리에이티브 3D 프린터&모델링'(미진사)이 있다. 중앙대학교, 과학기술대학교, 중소기업청, 미래부, 생산성 본부, 팹랩서울 등에서 3D 프린팅 관련 특강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떠남에서 정착으로


강지웅(이하 ’): 올해 프로그램에서 ‘스마트팜’이 눈에 띄었어요. 이 컨셉을 정하신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임도원(이하 ’): 지난해에 새로운 세상을 찾아 아이들이 어딘가로 떠나는 것에 이어서 올해는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고요.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현자의 돌’이라는 3D 프린터를 활용해서 세계를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의식주가 가장 중요하니까 농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스마트팜은 분해를 해보면 3D 프린터와 같은 기술로 만들어지거든요. ‘현자의 돌’을 분해해서 스마트팜을 만든다는 설정이 가능해져서 사용하게 되었어요.     


강: 논리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불편함을 무릅쓰고 먹는 일을 해소해야 하는 생존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부분이 고민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임: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올해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스마트팜이 있으니까 만들자’라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고민을 했고, 작년의 ‘아르르’라는 캐릭터에 이어 올해는 ‘자청비’라는 캐릭터가 등장해서 “예전에는 누구누구가 있었고, 이런 것들도 만들어졌었대” 하면서 이야기의 진행을 이끌도록 했어요.     


강: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제약이 따랐을 것 같아요.

임: 지난해 프로그램을 마치고 아이들 사이에서 ‘현자의 돌’이 유행처럼 회자 되었다고 들었어요. 코로나로 불가피한 상황이긴 했지만, 올해 진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취소하지 않고 짧게라도 진행하기로 했어요. 1박 2일 동안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한 팀은 섬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팀은 초등학교에서 진행했어요. 원래는 두 달 정도의 시간을 두고 씨앗이 발아하는 것부터 식물이 생장하는 조건을 배우고, 수경재배를 직접 하면서 농사에 필요한 도구를 3D 프린터로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려고 했어요.     


강: 재배한 작물을 활용하는 레시피를 만든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임: 레시피를 만드는 게 코딩 교육과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코딩이 기계를 자기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명령어를 짜는 일인데, 레시피를 만들면서 그 명령어가 적용되는 구조적인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여수 특산물인 방풍이랑 갓을 활용해서 너희 또래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레시피를 적어서 어딘가에 우리처럼 생존해서 정착하고 있을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자, 우리가 찾은 생존의 방법들을 공유하자고 제안했어요. 원래의 계획에는 키운 식물을 브랜딩하거나 다른 식재료를 찾는 등의 활동도 있고, 모든 과정을 담아 메타버스에 전시도 하고 발표까지 하는 것까지 있었어요. (일정상 여수에서는 전부 다루진 못했고) 토탈미술관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에서는 전부 진행할 수 있었어요.     


강: 말씀하신 과정들이 정착의 감수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갑작스레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 주어진 작년에 비해 안정감이 드는 한편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좁혀진 느낌도 들어요.

임: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구조는 그대로예요. 도구를 만들거나 레시피를 만든다고 할 때 어떻게 만드느냐에 대해서는 정해져 있는 건 없는 거죠.     


호기심으로 안내하기 위한 장치들


강: 작년에 ‘조력자’라는 역할을 두고 아이들에게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하셨던 것이 흥미로웠어요. 올해는 어떻게 하셨나요?

임: 공간 자체를 분리한 건 아니지만 아이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만들었어요. 스마트팜을 만들 때도 재료들을 열어두었더니 아이들이 먼저 가서 만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중학생 대상 프로그램에서는 최소한의 힌트가 있는 도면을 주었어요. 완성된 이미지와 재료를 주면서 재료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이런 방식 저런 방식으로 스스로 만들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이들과 서로 질문을 주고받았는데 그게 아이들에게 좋았던 것 같아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습시간에 목공을 배웠는데 그땐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부차적으로 달 수 있는 걸 가급적 많이 달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디자인한 건 뼈대에 연약해 보이는 구조를 덧대서 가까스로 서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 구조들이 서로 얽히면서 완성해갈수록 점점 내구성을 갖춰서 탄탄하게 서게 돼요. 처음엔 의아해하던 아이들이 완성해갈 때쯤 드러나는 걸 보게 되는 거죠.     


강: 설계의 묘미를 주신 거네요.

임: 그렇죠. 처음에 되게 연약한 구조물인 것 같고, 스스로 서 있지도 못하는데 서로 엉겨 붙으며 지지해서 서 있는 걸 보면서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리고 “효율성이 좋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신 거죠”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 질문은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오픈된 공간과 시간이 주는 깨달음인 것 같아요.     


강: 만들고 나서 다시 호기심이 가는 매력이 주는 재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현자의 돌과 자청비가 파국의 상황을 그린다는 점에서 코로나 때문에 만들어진 지금의 상황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혼란을 경험했다면, 올해는 그 혼란 속에서 무언가 나아간다는 점에서요. 아이들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좀 느끼지 않으셨나요?

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작년에는 낯설고 어려워했는데 올해는 작년에 이어서 시즌2로 이어지는 게임의 참가자가 되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올해는 어떤 미션이 주어질까 궁금해하는 분위기의 변화가 느껴졌어요.     


강: ‘자청비’ 다음의 세계관도 좀 구성하신 게 있으세요?

임: 여수에서 계속 진행할 수 있다면 지역의 스토리와 연결하는 부분을 생각해봤어요. 이순신 장군이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것도 해볼 수 있겠고, 거북선이나 화약에 담긴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요소들을 활용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메타버스를 아이들이 발표하는 정도로만 활용했는데, 미션을 수행한다든지 확장해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요.     


강: 메타버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임: 저는 전화 통화도 현실과 가상의 상황이 동시에 연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메타버스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미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고있는 아이들이 메타버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곳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미술계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저도 공부하고 있어요.     


강: 아이들이 메타버스를 대하는 걸 보면 굳이 가상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예술과 기술의 관계에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이들은 기술을 도구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는데, 그걸 굳이 구분하는 건 어른들의 관점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구분이 어른의 필요를 반영한 것이라면, 아이들의 필요는 혹시 다른 데 있는 건 아닐까,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임: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면서 스스로 필요를 느끼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가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했는데요. 고무가 달린 젓가락을 쓰다가 고무를 빼니 어려워했어요. 그런데 제가 하루 만에 가르쳤어요. 견과류를 집안 곳곳에 두고 아이가 젓가락으로 견과류를 집는 과정을 따라다니면서 스포츠 중계하듯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하루 지나서 다음 날부터는 그냥 젓가락을 쓰기 시작했어요. 흥미를 유발한 거죠. 저는 제 아이가 젓가락을 좀 잘 썼으면 해서 그런 거지만 학교에서 많은 학생에게 일일이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죠. 그렇지만 이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심심함을 얼마만큼 기다려보셨나요?


강: 한편으로 너무 많은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서 너무 막막하다고 할까요? 그런 상황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임: 인간은 심심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방법을 찾아낼 수 있거든요.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방법을 찾기까지 얼마만큼 기다릴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다리는 게 힘들긴 해요. 여수에서 목공을 할 때도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데이터를 주고 기다렸거든요. 도면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치수가 있는 그림이 있을 뿐이었는데 찾아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걸 보고 다른 학생이 같이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거 잡아줘”하고 서로 역할을 찾아가면서 협력도 하고요. 기다리면 만들어지는 상황이지만 일상적으로 기다리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다 아는 입장에선 기다리는 일이 답답하기도 하거든요.     


강: 한편으로는 이미 잘 만들어진 제품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원리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과제일 것 같아요.

임: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익숙하게 사용하는 것과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나, 용도를 바꿔보면서 동작하는 원리를 이해해보면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고민해요. 3d 프린터를 분해해서 스마트팜을 만들어서 쓰는 것처럼 전환의 지점을 모색하는 게 그동안 나름대로 찾은 대안이에요.     


강: 말씀하신 생각의 전환이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접근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 이번 프로그램에서 3D 프린터를 직접 분해해서 스마트팜으로 만들진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원리에 대해 설명해줬어요. 저희 프로그램의 세계관에서는 자원이 제한된 상황이다 보니 흥미를 유발하는 것까지 이어졌던 것 같아요.     


강: 올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하시나요?

임: 협력과 협동의 경험이요. 유연하게 타인과 협력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요. 어른들이 주는 정보가 적을수록 아이들은 협력하더라고요.      


강: 코로나 상황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협력의 가치에 더 공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임: 코로나 상황은 정말 기술의 전보를 앞당겨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앞으로 한 10년은 걸릴 거야’라고 했던 것들이 삶 안으로 더 많이 들어온 것 같아요. 이런 배경에서 개인화되고 개별화되는 변화가 이야기되지만 그럴수록 어려서부터 박수를 쳐줄 줄 알고 박수받을 때 어떻게 행동할 줄 아는 감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강: 코로나 시기가 언젠가는 끝나겠지요? 코로나가 끝난 이후의 일상을 코로나가 있기 전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인지, 전에 없던 새로운 일상이 펼쳐지는 것인지로 나눌 수 있겠더라고요.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코로나 이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협력 외에 어떤 감각을 예술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까요?

임: 함께 모여 재미있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감각이요. 극장에서 즐거운 장면이 나오면 다 같이 웃잖아요. 예술을 향유하는 소양의 시작은 함께 모이는 것부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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