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Nov 22. 2022

 알고보니 자기개발서를 능가하는 인류학서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신념이 단순히 인간의 상상력에 불과한 산물이라는 사실, 따라서 상황에 의해 얼마든지 가변적일 수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인간의 기본권은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개념일 것이나, 200년 전만 하더라도 서방 사회에서 흑인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백인의 대규모 농업과 편의에 의해 노예로 사고 팔리는 존재였을 뿐, 서구 사회의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기본권은 어디까지나 백인 남성에 한정된 권리였다. 1500년대에 여성은 독립된 개체가 아닌, 남성의 재산으로 간주되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에게는 남자의 재산 취급받는 그의 딸을 대신 처벌했다. 지금의 기준에서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았던 모든 것들이 당시에는 보편적 가치관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사상과 신념, 가치관은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따르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여기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으며,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내고 정립시키기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은 그래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그래서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철학과 사상, 종교와 윤리, 국가와 민족주의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창조된 산물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 안에서 인간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람 수는 15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거대한 조직과 사회를 이루고 강력한 신뢰와 연대를 기조로 하는 국가를 이루며 살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 또한 저자는 다름 아닌 인간의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신을 창조하는 능력, 공동체를 위한 가치관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신념으로 굳히는 능력, 이 공동의 신념을 거대한 목적의식으로 키워내고 더 나아가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 이를 통해 서로 한번도 만난 적 없던 사람들의 강한 유대감과 협력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이 신통방통한 재능을 통해 우리는 150명이 아닌, 몇 천만, 몇 억, 몇 십억의 협력 공동체를 얼마든지 이루고 살 수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고 천국이라는 내세에 가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선을 실천해야 한다.’는 기독교적인 믿음은 동일한 종교의 신자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신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동질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은 하느님 이외의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 똑같이 동의할 것이고 다른 신에 대한 우상숭배를 터부시 할 것이다. 죽어서 영원히 지속될 내세의 삶을 위해 현세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동일한 신념을 갖고 있고 기독교적 신념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전도의 의무감 하나만으로도 단결할 수 있다. 


 더 충격적인 건, 더 나아가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국가와 기업마저 엄연히 따지고 보면 특정한 실체가 없는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허구인 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처음엔 어떻게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 나갈수록 정확한 지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기업의 실체란 무엇인가. 기업의 총수인가? 기업의 직원들인가, 아니면 기업이 갖고 있는 계좌인가. 그저 법적, 공적절차를 거쳐 만든 페어퍼 상에 올린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만약 삼성이 부도가 났다고 이재용 개인이 파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업의 빚을 직원들이 갚아야 하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닐 것이다. (많은 수의 직원이 해고당하긴 할 것이지만 말이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손에 잡히는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가?

 

 국가 또한 마찬가지, 국가가 대통령이나 총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란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부여받은 하나의 상징이자 인간이 만들어내고 모두가 동의한 상상의 권력이다. 상상으로 만들어낸 실체 없는 허구에 중차대하고 막중한 가치를 걸 수 있는 신념과 배포, 어찌 생각하면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싶은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조직의 긴밀한 결속력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 덕분에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제치고 신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상상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사피엔스’는 이제껏 읽었던 모든 책 중에서 사고의 대 전환을 겪을 수 있는 단연 최고의 책이었다. 시크릿과 같은 어떠한 센세이셔널했던 자기개발서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신선한, 어찌보면 시크릿을 능가한 비밀을 품고 있는 책인지도 모른다. 

 

 당분간 사피엔스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러 개의 소주제들에 대해 마음껏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산? 약간 실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