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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Dec 17. 2022

경이로운 '아바타2', 이런 점들은 많이 아쉽네.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그래픽,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판도라의 모든 생태계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이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자연에 기꺼이 순응하고 어우러지는 나비족과 모든 생명이 환상적으로 연출되는 ‘아바타’는 지구인(?)이라면 죽기 전에 마땅히 봐야 할 작품이지 않나 싶다. 아바타2의 개봉소식과 함께 안전하게 평일티켓을 확보하고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레발치는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작품이 워낙 다방면으로 압도적이라 세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갈 때 쯤엔 설리 가족의 다이빙 씬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로아크가 파이칸의 지느러미를 잡고 바다 안에서 우아하게 나는 장면을 다시 감상하고 싶었다. 영화가 주는 시각적인 황홀감과 쾌감은 두 번 , 세 번 다시 가서 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했다.


 

사진출처 : 네이버TV
사진출처 : 네이버TV


   아바타1을 접했을 당시, ‘문명인과 야만인’에 대한 세계관과 사고방식이 통째로 흔들렸던, 매우 센세이셔널하고 신선했던 소재에 대한 경험은, 재탕을 해도 나에게 여전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초록초록한 대자연과 다양하게 얽혀 공존하는 생태계를 눈이 아프게 보고 있자면, 이 모든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를 앗아간 것만 같은 회색빛의 현대문명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르기도 한다. 자연을 누릴 시간은커녕, 산책할 여유조차 없이 일하는 현대인과, 나비족 삶의 형태와 비슷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원시부족 중 과연 누가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비족의 서사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현대인으로서의 현타와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은 인류의 최대 사기극이다.’라고 했듯이, 인류의 재앙은 인간이 좀 더 편하게 살고자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조정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제임스 카메론이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일부 지식인으로부터 대중에게까지 폭넓게 이끌어 준 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바다와 바다의 생태계에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가져온 그가 드디어 바다 속 다이빙을 아바타의 소재로 끌고 들어와 줬던 것도 개인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아직 초짜 프리다이버이지만 얼마나 흥미와 열의를 갖고 이번 작품을 봤는지 모른다. 이퀄라이징(수심에 대한 압력평형)이 안 돼서 좀처럼 레벨 업을 하지 못하는 처지라, 잠깐 흥미를 잃으려 했던 찰나에 아바타2를 보고 다시 의욕이 되살아났다. 돌고래와 유영하기, 바다 속에서 아바타 속 툴쿤과 같은 고래와 조우하기, 타이거 샤크 떼의 한복판에 서 있기 등은 내 인생 위시리스트 중 상위에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바닷가에서 사는 또 다른 나비족의 삶은 내가 꿈꾸는 것 그 자체이기도 했다. 내게 지금 경제적 자유가 주어진다면 난 당장 모든 걸 버리고 아직 원주민이 남아 있는 지구상의 어딘가, 이름 없는 섬에 들어가 나비족처럼 살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네이버TV

 

 도대체 어떻게 머릿속에서 그 많은 것들이 나올 수 있을까? 판도라라는 하나의 행성을 만들면서 감독은 오로지 상상력 하나만으로 외계행성에 대한 모든 동식물의 생태계를 창조해 냈고 나비족의 부족문화와 그들의 언어까지 만들어냈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제임스 카메론이 오래 병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무한한 상상력과 기술력을 마음껏 펼치고 떠나시길.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이번 아바타는 1편보다 더 퇴보했다고 느껴지는 면들이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기술노하우는 발전했으나 그의 일부 세계관과 가치관은 오히려 쇠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든 결점은 있겠으나 그 결점이 너무 크다면 작품 전체의 눈부신 빛과 색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그동안 수도 없이 봐 왔던 전통적인 가족애와 가족신화를 굳이 현란한 신기술로 무장한 아바타2에 끌고 들어올 필요가 있었을까. 특히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아버지의 사명감과 의무감은 다소 뻔하고 고루하게까지 느껴진다. 영화에서 ‘A father protects!(아버지는 지킨다!)’ 라는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제이크 설리 때문에 나중에는 오글거림이 섞인 짜증까지 올라올 지경이었다. ‘설리’라는 제이크의 성을 기반으로 하는 ‘Sullys stay togeher.(설리가족은 하나다.(이렇게 의역했던가? 기억이 잘..) 혹은 설리가족은 항상 함께한다.)라는 대사도 반복, 강조되면서 이번 시즌의 주제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데에 감독이 혼신을 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점점 그 기반을 상실해 가는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향수에 감독은 새삼 몰입하고 싶었던 건가.    

 

  한국도 이미 시작점에 와 있지만, 특히 서구 유럽에서는 가족의 형태가 사실상 붕괴되어 가고 있다. 국가가 가족이라고 인정해 주는 형태도 이성간의 결혼을 통한 부부중심의 가족이 아닌, 한 부모 가정, 동성 부부, 우정을 기반으로 하는 친구와의 동거형태 가족 등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공식적인 가족형태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법적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합의하여 변화해가고 있는 지금의 가치관과 가족형태 앞에서 카메론이 들고 나온 소재는 여전히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는 고루하고 따분한, 전통적인 가족신화였다.       

 

 ’숲의 부족‘이 섬기는 최고의 신인 에이와가 선택한 제이크의 자식이 ’키리‘라는 딸아이라면 스토리는 온전히 키리를 중심으로 돌아갔어도 되었다. 그래야 덜 산만하지 않았나 싶다. 포커스는 키리와 함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둘째 아들 로아크에게도 지나치게 맞춰져, 플롯과 스토리가 다소 분산되어 따로 노는 느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상영시간은 불필요하게 늘어났다. 신성한 생명체인 툴쿤의 파야칸이 로아크가 아닌, 에이와와 교신하는 키리를 점지했다면 훨씬 더 설득력 있고 일관성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 한가지,  숲의 부족의 최고의 신이,’에이와‘라는 여신이라면 부족의 혈통은 모계가 되어야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도 있다. 실제로 농업혁명 시대 이전 수렵, 채집 시대의 오랜 기간 동안 모계사회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공통적인 학자들의 학설도 있다. 절대신을 여성신으로 섬기는 가부장제 부족사회라니, 상상력 풍부한 제임스카메론의  역발상은 그마저도 참신한 걸까, 아니면 현란한 그래픽 기술 뒤로 구시대적 가치관을 숨겨 놓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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