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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Aug 20. 2022

한산? 약간 실망.

 '명량'의 강렬한 OST를 잊지 못하여 빗길을 헤치고 한산을 보고 왔다. 열 두척의 초라한 조선함대가 위대한 출정을 나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그 압도적인 사운드 하나 때문에 '명량'은 나에게 내내 위대한 영화로 남아 있다. 한때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던 음악감독 김태성에 대한 정보를 마구 검색하고는, '어라, 아이비 남자친구였어?' 했던 기억이 난다.

 

 '출정'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OST, 언론은 조선 역사 영화에 웅장한 바로크 음악을 도입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는 둥의 칭찬을 했던 것 같다. 다 떠나서, 그냥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 좋은 거다.

 

 나는 금관악기들의 소리가 그렇게 좋은지는 이 음악을 듣고 처음 알았다. 트럼펫은 너무 코끼리 소리같다 생각했고 호른은 소라고동소리처럼 이상하다 생각했다. 트롬본 소리를 제외하고는 금관악기 소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관악기가 메인으로 쓰이는 행진곡은 잘 듣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웬걸, 강한 호른과 트롬본의  합주로 시작하는 출정의 초반부분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밑에 위압적으로 깔리는 튜바소리와  처음부터 끝까지 두들기는 베이스의 큰 북 소리는 너무 멋있다. 특이하게도 바이올린 합주가 같이 베이스로 사용되는데 특유의 긴박한 분위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서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다. 후반부에는 호른, 트롬본, 튜바가 모두 모여 미친듯한 합주를 해대는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영화 음악을 듣고 이렇게까지 감동을 받아 본 일이 있었을까.

 

 '명량'이 잊혀질 때쯤  '한산'이 나왔다는 소식에 나는 같은 음악감독인지부터 찾아봤다. '김태성'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쟁영화를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당근 또 봐야지, 생각했다.


 근데.. 그냥 재탕이었다. 전편보다 더 멋지고 더 웅장한 새로운 OST가 나올거라 기대했던 나는 이 시시한 반전에 시큰둥했었던 건지, 영화도 그저 그랬던 느낌이다. 평론가 이동진이 명량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영화가 나왔다고 칭찬했었는데  속은 기분이 드는 걸까. 음악감독은 메인 OST였던 '출정'을 약간의 편곡만 거친 채로 다시 사용했는데 영화의 결정적인 씬에서 시의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했던 탓일까, 별로 임팩트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살짝 옆으로 비켜가는 얘기지만.. 내가 나이가 들은걸까?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얘기하는, 영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 주제의식이나, 사뭇 비장함으로 일관하는 박해일의 표정이나, 자신의 나라가 '불의'라고 결론지어 일본을 배반하는 일본 장군이나, 왜 약간씩은 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박해일은 영화 내내 대사가 거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박해일의 대사는 '출정하라.'와 '발포하라',두개 뿐다. (물론 이보다는 말을  더 했다.) '의'를 얘기하는'한산'의 이순신보다 백성에 대한 '충'을 고민하는 '명량'의 이순신이 차라리 내게는 더 와 닿았던 듯 하다. (국제 사회에서 의가 어디있고 불의가 어디있니.)


 아무튼, 편곡에 실망한 나는 집에와서 밤 열두시까지 명량의 '출정'을 듣고 있는 중이다. 한밤중에 블루투스의 볼륨을 한껏 높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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