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여자3

by 이라IRA

뼛속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낯설어지고 나니, 배신감보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민진 자신이 있던 자리에 항상 있어줬으면 하는 내 바람이 나만의 지나친 욕심이라는 얘기도 맥락없이 왜 나오는 건지 모른다. 차라리 그녀의 일기장을 들추지 않았더라면 나았을까.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언제부터 변했던 걸까. 이 얘기는 민진의 생각일까, 역시 승언의 주장인 걸까. 그녀는 언제부터 승언과 뒤엉켜 지냈던 걸까.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떠난다면 그녀는 사회적으로 고립될 것이다. 그녀의 몇 안되는 친구들은 모두 이 커뮤니티 안에서 나를 통해 친해진 사람들에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도 절연한 지 5년이 넘었다. 민진의 어머니 된다던 사람은 우리를 싸잡아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하며 통곡했다고 했다. 교회에 그녀를 끌고가서 누가 들을까 주위를 면밀히 살피던 그녀는 민진에게 다급한 성녀처럼 속삭였다.

“당장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거라! “


그녀 아버지 똘기 또한 만만치 않아서 우리 회사 앞으로 찾아 올거라는 엄포를 놨었다. (민진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고 울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 위인이다.) 내가 그녀를 버린다면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그렇게 보복하면 내 마음이 과연 풀릴까?


그녀와 공동명의로 된 아파트들은 다 어떻게 할까. 같이 살고 있는 이 집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그 집, 그걸 어떻게 나누지, 생각하자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에게 그 집이 사실상 민진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털어놓지. 이건 웬만한 부부의 이혼보다 더 골치 아픈 게 아닌가.

밤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잠을 이룰 수 없다. 지금 가 있다는 워크샵도 틀림없이 거짓이겠지. 하지만 승언과 같이 있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녀의 몸 위에 자신의 더러운 몸을 포갠 승언을 눈 앞에서 보았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둘을 죽였을지 모른다. 워크샵일거다. 그래 잠들기는 틀렸어도 그것만은 그렇게 생각하자.

아니, 그들은 지금 같이 있다. 여자도 아닌 새끼가 여자로 둔갑을 하고 내 여자를 뺏어? 이 새끼는 어떻게든 망가트려 줘야 한다. 민진을 용서하는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나는 승언의 직업이 작은 소문에라도 취약하다는 점을 안다. 대한민국 어디보다도 보수적인 곳이라는 곳도. 그놈이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을 문제삼는 것이 PC적으로 어떤 일인가는 그놈의 정체가 발각되고 난 후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제보자가 나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상관없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승언이 나에게 보복해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조리돌림은 그 강도 자체가 다를 거다.

나는 익명의 메일 계정을 하나 만들고 그가 다니는 회사의 리크루트 계정에 메일을 하나 쓴다.

'저는 귀사와 함께 일했던 OO 사의 박은주 과장입니다. 강승언이라는 마케팅 부서의 직원과 접촉했을 때, 이전 신분과 관련한 정보를 알게 되어 제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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