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족의 흔한 풍경1.

이대나온 여자와 언니

by 이라IRA

엄마는 이대 나온 여자다. 그 옛날 학창시절 가구 조사란에는 부모님 학력을 묻는 칸이 있었다.거기에 ‘대졸’이라고 써넣으면 담임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나를 불러다 놓고 아버지의 직업과 엄마의 출신대학을 물어보고는 했었다. 깊게 패인 주름마저 세속적으로 보였던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은 엄마의 출신학교를 알고 나자, 어린아이였던 나조차도 느낄 정도로 홀대하던 태도가 돌변하기도 했었다.


우리의 인생은 영화와는 다르다. 사건은 불연속적으로 끊어지고 신나는 일은 가끔만 일어난다. 벅찬 감동이나 쾌락은 찰나로만 스쳐가는 법, 이토록 지난하고 지루한 인생을 살면서 마음속에 탄탄한 심지 하나를 갖고 살기는 어렵다. 엄마는 허구한 날, 미워하다 못해 매일같이 경멸하는 남편과 함께해야만 하는 재미없는 일상에, 속수무책으로 기울어만 가는 가산을 지켜봐야만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살았다. 자신의 현 생이 삭신이 쑤셔와도 해야만 하는 다섯 식구의 뒤치닥 거리의 무한반복 인생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 그래도 난 이대 나온 여자’ 라는 정체성, 자부심과 현실의 괴리가 그녀를 고통의 구렁텽이로 더 밀어 넣었지만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초등 2학년때 담임 같은 사람을 만날 때면 재밌게도 그게 인생을 버티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어떤 가정이든 가까이 들여다보면 경전 한 권씩은 있는 법이라 했던가. 조상으로부터 자잘하게 얻은 토지 조각들로 별다른 굴곡 없이 살아온 우리 가족에게도 그 작은 조각들마저 점점 사라지자 경전은 그만큼씩 두꺼워졌다. 금싸라기라고 생각했던 땅덩어리가 참여정부 때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이고 토지 매매에 대한 세금폭탄 정책이 시작되면서 부모님은 경제적인 궁핍이 무엇인지 난생 처음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부부 싸움은 잦아졌다. 오밤중 집 안에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두 분의 언성으로 다음날 우리 세 남매는 퀭한 눈으로 등교하고는 했다.


“내가 요즘 친구들 모임에도 창피해서 못나간다. 사는 재미도 없고 정말 내가 무슨 죄로 저런 인간을 만나서 이 꼴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면 모두 같은 학교 출신이니, 거기서 엄마가 딱히 내세울 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엄마의 레파토리 후렴구는 주로 내 앞에서 보다 언니 앞에서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언니가 고등학교 때 제대로 삐딱선을 타고 나갔기 때문에 엄마가 기대하는 학교도, 직업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는 ‘엄친딸’과 언니를 비교하거나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의 ‘여우’ 같은 여성 캐릭터를 통해 언니를 돌려까거나 때로는 직접적으로 디스하기도 했다.


“아야, 지상이 딸 지연이 있잖냐. 걔 봐라. 저기 군산에서 이름도 없는 대학 나와서 그리 잘 사는거. 걔네 아빠 그렇게 세무조사 당하고 나서 회사 문닫고 망해버렸는데도 딸이 의사 사위 물어서 걔네 집을 그렇게 살렸지 않냐’


이건 대놓고 ‘너도 미색으로 우리 집안을 일으켜 봐라.’ 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리 미색도 아닌 언니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혼주의라는 게 함정이었다. 언니는 매번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엄마, 아빠랑 사는 거 보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도통 들지가 않는데? 누굴 만난들 결혼한다고 마냥 행복할까, 그건 그냥 환상이야. 엄마가 산 증인이잖아!”

엄마는 언니에게 말로 주고 항상 되로 받으면서도 그녀에게 ‘결혼’이라는 과제를 완수시키려 한다.

“그래, 난 모자라서, 곰이라서 그랬다. 너라도 여우처럼 좀 잘 살아 보라는데 왜 곰탱이 같은 소리만 탱탱 해대냐.”


엄마와 언니, 곰 과의 두 비슷한 여자의 대화는 어째서인지 우주의 끝과 끝에서 평행으로 달리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언젠가 언니가 나에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학교 다닐 때 공부 때문에 날 그렇게 두들겨 팼었잖아. 난 공부 잘해서 뭐 대단한 위인이라도 되라고 그러는 줄 알았어. 근데 대학 진로 정할 때쯤 엄마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교대 지원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라는 거야. 그때부터 공부가 딱 하기 싫지 뭐냐.”


자기 공부 못한 원인을 엄마에게로 돌리는 언니도 한심했지만 언니의 말에 나도 사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엄마가 언니를 적어도 장관 한 자리쯤은 앉히고 싶어하는 줄 알았다.


반면에 나와 내 동생 현우에게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한결같이 IQ 80을 넘지 못한데다, 성적표는 매번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른 등수였던 현우는 그렇다 쳐도, 나까지 그렇게 방치하는 건 나로서는 오히려 서운한 일이었다.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밤 늦게 책상에 앉아 언젠가 내 힘으로 가족까지 책임지고야 말겠다는 독기(?)를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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