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고 3때부터 열 두시간 씩 잠을 잤다. 피부미인 대회라도 나가려고 되고자 저러나 싶었지만, 더불어 체중도 많이 불어서 나중에 저 외모로 무슨 좋은 사윗감을 데려올까 엄마의 헛된 꿈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중 또 어느 날 부턴가는 이상한 허영심에 휩싸여 변변찮은 학교의 의상학과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해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래 너 잠 열 두시간 씩 퍼 잘 때 내가 네 성적은 진작 포기했다마는, 하고 많은 직업 중 디자이너가 되겠다니, 제대로 알아보기나 하고 벌써 앞날을 결정하는 거냐.”
“대학 가기 전 진로를 결정하지 그럼 대학 졸업하고 나서 앞날을 결정하나? 엄만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하네.”
내가 보기에도 어리석어 보이는 언니는 이어 의기양양하게 자기 주장을 이어간다.
“디자이너야말로 여자가 사회생활 하면서 유리천장없이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직업이라더라. 실장급 되면 웬만한 대기업에서 받는 팀장 연봉만큼 받는다더던데?.”
언니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었다. 이 악물고 공부해 누구나 인정해주는 학교 나와 안정적인 공기업에 다니는 게 최상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다른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유학조차 제대로 보내줄 수 없는 당시 우리 집안의 형편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나와 엄마의 눈엔 허영심과 뜬구름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잔재주가 많으면 뭐할까, 우리나라는 뭘 해도 학벌에 안정적인 직장인데, 좋은 혼처를 구하더라도 이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언니도 현실감각 없이 한심하지만, 우리 집안 경전의 또 다른 두꺼운 쪽수를 한껏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아이는 사실 막내 현우다. 이 아이는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아니니, 슬쩍만 얘기하고 지나가 볼까 한다. 길게 얘기할 가치도 사실 없다. (이 아이 뒤에서 나는 이 아이를 ‘잉여인간’ 혹은 ‘인간 쓰레기’라고 하고 다녔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공부와는 담을 쌓고, 겉 멋만 차곡차곡 쌓아가던 그 아이는 엄마가 언니와 사투를 벌이고 내가 어떻게든 이 집구석을 벗어나려고 버둥거릴 때, 험악한 전장 한 가운데에서 가장 느긋한 아이였다. 부모님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태어난 아들이라고, 현우는 어릴 적 돌팔이 사주쟁이한테서 아버지가 얼토당토 않는 사주를 받아놓고는 그 시간에 딱 맞춰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얘는 대기만성형 사주야. 살면서 대박 운이 따라주는 사주라고 하지 않아? 급할 것 없이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아이야. 혹시 아나, 이 나라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지!”
(그래, 별 해괴한 것들도 대통령 되는 나라에서 운이 억수로 좋으면 이 아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현우는 이 얘기를 의심도 하지 않고 믿고 사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그 아이의 ‘대기만성형’ 사주에 대한 신념은 전교 꼴등에서 거꾸로 세는 게 쉬운 등수임에도 불구하고 3수까지 하겠다고 버티더니, 결국엔 야간 대학에라도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버지는 없는 형편에 억지로 ‘학교 같지 않은 학교’에 대줄 등록금은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엄마의 결사 반대에 못을 도로 빼야만 했다.
“고졸보다는 야간이라도 보내는 낫지 않겠나요. 우리나라에서 고졸이 사람 취급 받으면서 살 수 있습디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 과 ‘사람취급’ 이라는 강력한 관념은 마뜩잖은 아빠로 하여금 얼마남지 않은 논 중에서도 꽤 괜찮은 입지에 있던 논을 팔아 치우게끔 하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 아이는 졸업하고 5년 넘게 집에서 히키코모리 놀이를 했다. 밤에는 게임을 하고 대낮에는 잠만 자다가 가끔 엄마가 등록해준 취업준비학원을 다녔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좋은 학벌로 만들어 놓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현우의 그럴듯한 첫 직장을 부탁했다. 부모님은 번번히 망신만 당했다. 상대적으로 참을성이 부족한 아버지의 화산이 먼저 폭발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빠는 현우가 이따금 모두가 잠든 새벽, 광기어린 피아니스트 마냥 키보드를 두들겨 패는 2D 게임의 공룡처럼 돌변했다. 아빠는 현우에게 용암탄을 쏘아대듯 언어폭탄을 마구 쏘아댔고 현우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는 한결 같은 소신이 있었다. 현우는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어했다. 우리는 너무나 당당한 현우 앞에서 종종 할말을 잃었다.
“누나는 각자 누나들 몫이 있었잖아. 가장 좋은 건 항상 큰누나가 먼저 차지했어. 이제 나도 부모님한테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지 않아?”
그 아이의 찌질함이 당당함으로 변질된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어렸을 땐 제법 똘똘해 보였던 맏이에게 엄마도 아빠도 거는 기대가 상당했으니까. 언니는 항상 가장 큰 방과 가장 좋은 것을 가져갔으니까. 그래서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딸들이 더 예쁨받는 집’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수 있었으니까.
‘박씨집안 종손’이기도 한 자신에게 그럴듯한 취업자리를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총동원되어 대줘야 한다는 현우의 ‘기저질환’에 놀랍게도 아버지의 6촌(그러니까 나에게는 7촌이 되었다.)까지 총 동원 되었다. 부모님은 희망 없는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내가 다 숨고 싶을 정도로 계속 퇴짜를 맞았다. 다른 집들도 이러는 걸까, 우리집만 유별난 걸까?
“야, 넌 그래도 네 동생한테 돈은 안 뜯기잖아. 난 내가 번 돈 지금 남동생 유학비로 반 이상은 나가고 있어. 나중에 무슨 돈으로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 시대에 이건 또 무슨 ‘그리스인 조르바가 살아 돌아와 설칠’ 일인가?
“네 동생은 고마워하기나 해?”
“그건 문제가 아니야. 그냥 이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게 나에겐 중요해. 지금이 21세기라는것도,”
“네 돈인데 너한테 결정권이 없단 말이야? 네가 못 주겠다고 하면 그만인 거잖아.”
혜린이의 얘기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가 맨날 우는 소릴 하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 할 수 있냐. 걔가 엄마를 들들 볶는 걸 알아도, 그게 짜증나고 괘씸해도 엄마가 나한테 매달리면 거절할 수가 없어.”
아, 착한 딸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딸의 등골을 빼먹는다는 엄마들의 얘기는 TV에서 가끔 본 적이 있었다. 트롯 가수 장윤정네 가정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바로 내 옆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엄마가 나에게 남동생 생활비를 대라고 요구하지는 않으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건가.
이 시대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우리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다시 ‘이상한 자매님’ 언니 얘기로 돌아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