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신기하게도 언니는 자신의 의지대로 재능을 펼치며 사회생활을 해나갔다. 짝을 찾아야지만 독립된 세대원을 꾸릴 자격이 있다던 엄마의 신념을 깨트리고 자신의 짐을 주섬주섬 챙기더니 어느 날 집을 떠난 것이다. 엄마는 마치 새끼를 잃은 어미오리처럼 굴었다. 막상 서른 다섯 먹은 새끼 오리는 그날을 해방 일의 기념일로 지정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일터, 여자들만 모여있는 그 세계는 남자들만 가둬놓은 군대보다 더 군대 같은 바닥이라는 사실과, 노조도 없이 매일 야근을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거기 다른 부서들은 간혹 노조가 있다며? 그래서 여섯 시면 디자이너들만 남겨두고 칼 퇴근 한다며? 디자이너들은 왜 그런걸 못 만드는 건데?”
내가 이렇게 물으면 언니는 불편한 기색으로 매번 대답을 피했다. 표정을 봐서 추측건대, 언니도 자기들끼리 노조 결성을 못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고작 들을 수 있는 대답이라곤 항상 이정도였다.
“우린 일이 너무 빡세서, 그런 거 만들 여유도 없어.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는데 무슨 노조를 만들겠니.”
우와, 그 정도 노동 환경이라면 정말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허구한날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를 해댔고 병원에 다니는 횟수가 잦아졌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언니는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얘기를 습관처럼 반복했고 듣는 사람 짜증나도록 짜증이 늘어갔다. 내가 엄마에게 줬던 사내복지 문화카드를 보고는 종종 내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참나, 너희는 국민혈세로 신선놀음이나 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녀는 공기업에서 사내대출이나 은행 제휴를 통해 매우 낮은 이율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자, 나의 근무환경에 대해 시비와 냉소로 일관하던 태도를 순식간에 수정했다.
“넌 참 좋은 회사에 다니는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으면 그 정도 혜택은 받아야지!”
예전부터 그녀가 패션에 관련된 레드오션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건 그냥 관심이자 탈출 욕망일 뿐,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되거나 전략된 계획은 아니었으므로, 그녀가 한참 자신의 패션사업의 스타트 업에 대한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을 때 난 언니를 최대한 피해 다녔다. 몇 번 운을 띄우던 그녀도 시간이 지나자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후로 그녀를 계속 살게 한 건 일종의 체념과 회사를 향한 증오, 상사에 대한 처절한 뒷담화라고 해야하나. 예전처럼 팀의 디렉터가 밤 늦게까지 남아 늘 같은 중국 집에서 같은 짬뽕을 홀로 배달시켜 먹는 게 미워 죽겠다고 흉을 봤고 회사 대표가 이번엔 어느 팀 실장을 하루 아침에 해고시키고 박살내 버렸다는 얘기를 극적 묘사를 더해 들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그 인간이 부담스럽게도 꽉 끼는 흰 바지를 입고 왔는데 거기에 짬뽕 국물을 엎은 거야. 바로 그 부위에 말이야, 하핫! 고소해서 죽는 줄.”
(꽉 기는 흰 바지를 입고 온 언니의 상사의 성별은 남자다.)
남을 조롱하는 얘기가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엄마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하지만 웃음 끝에는 처연함과 측은지심같은게 묻어있다.
“징징대지들 말고 어여 시집들이나 가라.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현우는 그렇다 쳐도 느그들은 혼처 찾아사 살길 찾을 수 있지 않냐. 요즘 아무리 결혼들 늦게 한다지만 혜인이 넌 곧 마흔인데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냐. 혼자 살면서 결혼자금이라도 모아야지 그렇게 펑펑 써대면서 계획없이 살면 어쩔려고 그러냐 응?”
엄마의 입에서 언젠가부터 ‘무계획 인생’ 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난 후 엄마는 날 붙잡고 또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다.
“혜인이 저것이 이제 와서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지 뭐냐. 저 나이에 심리상담사를 하고 싶다고.. 대학원까지 학비 좀 대 달라고 하는데, 참.. 속이 갑갑해서 요즘 못 살겄다.’
한숨을 쉬다가 문득 나를 쳐다보는 엄마에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이 지겨운 돌림노래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그녀의 인생을 내가 일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지 않은가. 앞서 얘기했지만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뭐든 좋은 것은 제일 먼저 가져갔다. 그럼 지금은 자기 앞가림은 하고 부모에게 효도할 시기이지 않냐는 말이다. 집에서 놀고 있는 남동생은 다달이 몇 십만원씩 용돈이나 뜯어가고, 위 아래로 한심한 것들에게만 부대끼고 있으니, 다른 가족의 둘째는 모두 이렇게들 살고 있는 건가.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영원히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을 줄만 알았던 현우가 의외의 폭탄 선언을 하리라고는 사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취업준비하다 몇 년 동안 만난 여자애가 하나 있는데, 아 글씨, 아이가 생겨 버렸다지 뭐냐. 아야, 근데 여자애는 취업해서 번듯이 은행에 다닌단다. 그 아이가 그동안 현우를 만난 거 보면 눈에 단단히 뭔가가 씌어서 현우를 엄청 좋아하는 게 틀림없지 않냐. 여자애네 집엔 뭐라고 둘러댔는지 모르겄지만, 이 참에 결혼을 시켜버리는 게 낫지 않겄냐?”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마치 국가기밀이라도 되듯 비밀스럽게 얘기를 이어나간다. 하기 싫어 미뤄놨던 업무들을 저만치 더 미뤄두고 엄마가 앞으로 처리할 ‘위대한 프로젝트’를 이번엔 유심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 쟤, 그동안 놀기만 했는데 무슨 돈으로 보낼 건데?”
설마, 혜린이네 엄마가 혜린이에게 요구하는 비슷한 걸 우리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거 아니겠지.
“아니, 그건 하나 남아있는 농지가 있어. 그거 팔아서 집이라도 해줘야지. 그래야 여자애한테 무시는 안받으며 살지 않겄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저 한심한 놈에게 갑자기 땅을 팔아 몇 억을 덥석 주겠다니, 현우가 이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진작 아무나 손잡고 데리고 왔을 터였다.
“내가 예전에 같이 손잡고 병원 갔던 여친들이 꽤 있었지.”
그 한심한 새끼는 이걸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고는 했었다. 그 놈이 훗날의 엄마 속내를 알아차렸더라면 첫번째 임신시킨 여자애 손목을 잡고 바로 집에 들이닥쳤을 터였다.
“아휴, 그 땅 팔아봐야 얼마 안 나와야. 그래도 조그만 아파트 전세라도 해 줘야지. 그래도 남자 놈의 새끼가, 집에서 희망도 없이 맨날 이러고 있을 바엔 이 기회에 이렇게 결혼시켜버리는게 낫지 않겠냐. 이후엔 마누라 눈치 보여서 지가 어떻게든 지 살길 찾기라도 하겄지.”
가만, 듣고 보니 이번엔 엄마의 아이디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잖아? 나야, 평생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잘리지 않을 직장에, 언니와는 다르게 해외지사 근무 때 넉넉히 저축도 해놓은 돈도 있는 상태다. 저 놈을 이 집에서 이런 방식으로 치우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 아니던가. 장가를 가게 되면 와이프와 처가에 면목이 없어서라도 자기 앞길 스스로 헤치며 살지 않을까? 우리 집안에 이렇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고민 끝에, 나는 그 아이의 결혼 자금을 위해 회사 저이율 대출로 2천만원을 받았고 선물로 내 돈 천만원을 얹어 주기로 했다. 현우가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던 건 당연했고 누구보다 부모님의 얼굴에 만연한 화색이 도는 걸 보니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하셨다. 현우의 결혼과 올케 될 아이의 집안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얘기들을 했고 예물과 식장에서 입을 한복에 대한 고민으로 행복하시는 듯 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언니가 통화를 한 적은 없다. 같이 살 때도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이제 모두 떨어져 사니 더 소원해졌다고 해도 현우의 결혼 얘기가 오가고 나서 언니는 유독 더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수신차단을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현우 결혼식이 다가오자 공교롭게도 언니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안좋아 진 건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었다. 날마다 아프다 짜증난다 툴툴대고 징징대던 언니의 하소연이 엄살이 아니라 암의 전조증상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엔 하필 현우의 결혼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병원에서 자궁내막암 2기 확진을 받고 돌아온 언니는 그날 밤, 일찍 잠에 들어야 하는 애꿎은 현우와 엄마를 향해 날 선 저주의 말을 퍼부어 댔다. .
“집에 돈 한푼 보태 본 적도 없고, 인생의 쓴 맛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끼한테, 결혼한다고 하니까 집에 남아있는 재산을 몽땅 줘버려? 나는 무슨 죄로 허구한날 야근하고 죽지 못해 이 꼴로 살다 죽는데! 도대체 네 까짓 게 뭔데?!”
그녀는 엄마와 현우, 나와 누구에게 인지 모를 허공에게, 번갈아 가며 악다구니를 썼다. 다음 날 언니가 불참한 결혼식에 부모님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손님들을 맞았고 큰 딸이 안보이는 이유를 묻는 하객들에게 우리는 언니의 계획에 없던 해외출장을 위장해야 했다. 우리 가족 모두 내심으로는 반 초상이었으나 남들이 보기엔 그 정도면 무사히 화기애애했다. 결혼식 날엔 날아갈 듯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 산다지 않니?”
폭우가 왔던 것 치고 성공적인 결혼식이었고 나는 부모님에게 귀가 닳도록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지는 않았으나 언니는 수술 후 평생 ‘림프 부종’이라는 하체가 부어 오르는 후유증을 얻었다. 그녀는 회사로 복귀할 수도, 다른 곳에 재 취업을 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언니의 병에 이은 경제적 추락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반쯤 자포자기한 듯 보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엔 누구의 잘못도 없었다. 누구의 의도도 개입하지 않았다. 그냥 이 모든 일이 그저 일어났을 뿐이다.
심신이 병든 언니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져 나는 왠지 어느 때보다도 집에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병든 언니의 수발을 드는 엄마는 내가 챙겨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에서 얻은 인센티브와 코인으로 얻은 수익을 합쳐서 집안의 가구와 가전들을 바꿔드렸더니 언니의 히스테리로 같이 병들기 직전이었던 엄마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돌았다.
게다가 엄마가 잊어버릴만 하다 싶으면 얘기를 꺼냈던 지상 아주머니의 ‘여우같은 ‘딸 지연의 얘기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되었다. 나도 그 지연인지 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우’ 못지 않은 남편을 얻었기 때문이다. 세무사 친구로부터 동료를 소개받은 날, 그 사람은 자신의 두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람이 과거에 이혼 경력이 있고 약간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과, 슬하에 아들과 딸 하나씩 두고 있다는 것까지 부모님에게 굳이 오픈할 필요는 없었다. 예전에 드렸던 용돈보다도 더 넉넉하게 드릴 수 있게 되었고 가끔 더 큰 선물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면 감사한 일이다.
나와 내 남편은 자연스레 집안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도맡아 결정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특히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토지관련 소송건과 매매건을 모두 나에게 맡겼다. 열시까지 야근을 이어가는 달에도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이 사건들을 다 처리해 나갔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건 회사 일보다도 더 묘한 성취감을 안겨줬다.
나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는 줄이는 대신 혜린이를 예전보다 더 자주 만났다. 간검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황달기가 도는 얼굴에 부쩍 수척해진 기색의 그 아이와는 다르게 혜린이는 나를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넌 근데 이상하게 예전보다 얼굴이 더 좋아졌어”
그래? 생의 고달픔이 나를 살게 하는 동력인가보지 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와는 점점 더 소원해졌다. 시간이 더 지나자 언니와의 식사자리마저 불편해져 명절 때 조차 서로를 피해 다니는 지경이 되었다. 언니가 우릴 일방적으로 피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내가 연휴 중 부모님 댁에 찾아갈 날짜를 정해서 현우에게 통보하면 현우네가 그 날짜에 맞춰 같이 방문했고 언니는 그 날짜를 피해 오는 식이었다.
벚꽃이 한껏 펴서 바람에 꽃비가 흩날리던 어느 늦은 봄날, 난 회의실에서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창 밖의 바람에 팔랑이는 벚꽃 무더기에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의 무음 램프가 계속 깜빡이고 발신자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떠 있다. 잠깐 회의실을 빠져나와 전화를 걸자, 떨리는 음성이 귀 안을 가득 메웠다.
‘혜인이가 숨이.. 숨이 끊어진채로 발견됐다고 한다.. 차 속에서.. 좀.. 됐다고.. 지금 좀 와야겠는데 올 수 있겠, 어여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