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로 이런 삶도 있고, 이런 생각도 있고, 너도 나와 같구나 하는 다양성과 개인성을 같이 얘기할 수 있음에 누군가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은 평가 혹은 평점 매기기가 아닙니다. 영화를 통해 지식을 제공하며 생각과 의견을 나눔으로써 현재 우리의 삶과 연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며 제출했던 자기소개의 일부이다. 영화를 보고 쓴 글들을 읽으며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함께 얘기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는 혼자가 아님에 덜 외롭고 견딜만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The Forty Year Old Version은 오래간만에 마주한 그런 영화다. 동지가 생긴 것 같아 반갑고 든든하다.
감독 겸 주인공인 라다 블랭크(Radha Blank)
라다 블랭크는 인디영화(Independent film) 전문 사이트 인디와이어(IndieWire)에서 선정된 2020년 떠오르는 여성 감독 20명 중의 한 명이다. 그녀는 선덴스 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에서 U.S Dramatic Competition Directing Award를 수상한 두 번째 흑인 여성이 되었다. 마흔이 돼서야 제작한 감독의 첫 영화다. 마흔에 래퍼로서 새 삶을 꿈꾸는 영화 속 라다와 현실의 라다는 실제로 매우 흡사하다. 영화 속 라다의 오빠는 감독의 친오빠이며 실제 화가였던 엄마의 그림들과 재즈 드러머였던 아빠의 음악들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주인공역을 담당했으며 영화는 35mm의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감독은 영화 전반의 초점이 힙합에 맞춰져 있고 관객들로 하여금 일반적으로 과대하게 성애화(over sexualization)되어 있는 힙합에 대한 이미지를 버리고 좀 더 인간적인 힙합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흑백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색깔을 배제한 흑백의 스크린은 담백하고 단순하게 캐릭터와 캐릭터의 시선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랩을 하는 주인공 라다
영화는 라다가 자신의 비전(vision)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 랩이라는 그녀의 어릴 적 꿈을 자기 인식(self-awareness) 과 수용(self-acceptance)을 통해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극작가로서 반짝반짝 빛나며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시절처럼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다시 받기 위해 자본과 영향력이 있는 백인들의 취향에 맞춰 상업적으로 쓴 자신의 극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에서 그녀는 랩으로 사람들에게 그녀의 목소리로 자신의 메시지를 외친다. 영화 전반에 그려지고 있는 힙합은 라다가 주어진 것에 타협하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매개체로도 사용되고 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
의심할 여지없는 마흔 살의 버전
자신의 비전에 투자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
Find your own voice
Forty old year version indubitably
Fund your own vision
Fill your own void
Find your own voice
감독은 래퍼가 되고 싶은 마흔의 여자만을 그려낸 것은 아니다. 흑인계 미국인인 라다와 함께 그녀의 베스트 프랜드이자 에이전트인 아치(Archie)는 한국계 미국인 게이다. 영화 속에서 소수자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팔아거리거나 타협하거나 조롱당하지 않으며 주류의 무대로 들어가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풍자적이고 코믹하게 그들의 문화적인 정치적 현실을 그려낸다. 자기 연민이나 세상에 대한 냉소 따위은 없다. 대신 이들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을 통해 각자의 길을 찾아낸다.
라다는 그동안 회피해왔던 엄마의 부재와도 마주한다. 엄마의 죽음 후 아파트를 정리해야 한다는 오빠의 전화에 회신하지 않으며 현실을 회피해왔다. 영화의 처음부터 라다의 머리를 감싼 두건의 의미는 <위안>이다. 자신의 머리를 두건으로 감싸고 다니며 엄마의 부재에 대한 위안인지 자신의 공허한 현실에 대한 위안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한 어떤 물건이나 행위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하지만 분명 위로가 된다.
한국 넷플릭스에서 영화의 제목을 <위 아 40>로 변경해 공개했다. 영화의 제목은 그것의 얼굴과도 같은 것인데 원제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의 제목이라 많이 아쉽다. 시청자들이 한국에서 규정화된 마흔의 이미지로 영화를 마주하지 않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