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후라 이제 제 기능을 다해 열매를 키우지 못하는
고추나무를 뽑아 버리기에 어렵지 않았어.
그래도 아쉬워서
덜자라고 맺혀 있는 자그마한 것들은 따서 바구니에 담고...
모조리 다 뽑았어.
6년 동안 한 번도 감을 열지 못하고 가을이 깊어지면
이파리만 떨구어 잔디밭을 폭싹 쏟아져 내린 황폐지로 만드는 우리 집 감나무에 비하면
고추나무에겐 정말 미안했지.
오랜만에 쌀을 씻어 담고 물을 부으니 밥 익는 소리가
"치카치카..."들렸어.
밥이나 빵은 익을때 냄새의 도취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아.
그 냄새는 향수나 추억보다 더 숨통과 직결된 것인지라
향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냄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겠지만
그 냄새는 '난 누구를 기다린다'는 신호역할을 주로 했었지.
그래...
누구를 기다린다.
그리고
빛바랜 작은 램프를 켜고
빈 벽에 기대어 하모니카를 불었어.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 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같이 종일 놀다가
연못에 떠다니도록 버려 둔 나뭇잎배에게
못내 미안한 나머지
살랑살랑 바람 부는 갈잎 새에 떠다니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잘 있겠지...
잘 있겠지.